철들고 그림 그리다 - 잊었던 나를 만나는 행복한 드로잉 시간
정진호 지음 / 한빛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새해다.

그리고 새달이다.

해가 바뀌면 사람들이 흔히 새해 소망을 빈다.

건강하기를 가장 많이 빌지만, 사실 건강이란 것은 잃어 봐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 밖에서 버둥대 봐야 수어지교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듯이...

 

그래서 버킷리스트 따위를 만들면서, 죽기 전에 이뤄야 할 것들을 적기도 하는데,

그냥 적어두면 버킷리스트가 아니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면,

그래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오늘 한다면...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신선하게 느끼면서 살 수 있다면,

버킷리스트 따위와는 상관없이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예술이다.

오늘 불후의 명곡을 잠시 보는데 가수 '왁스'가 평소 가만 서서 노래하던 스타일을 벗어던지고,

머리엔 나비같은 모자를 꽂고, 하늘하늘한 미니원피스 차림으로 약간의 춤을 가미한 노래를 선보였다.

아마 그에겐 오늘 무대가 오래 잊히지 않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죽기 전에 언뜻 떠오르는 수천장의 그림 중에,

평소의 무채색 평범한 분위기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하루. 그런 날을 기억하는 것이 삶의 묘미다.

 

여행이 주는 재미도 그러하다.

주어진 일정에 따라 출퇴근하듯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여행이라 그러기엔 여행의 시간은 참 소중하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그때, 그 장소에서 일상을 떠난 빛깔로 빛나던 그 곳이 마음 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추억 역시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 시간들이 오롯이 남아있어

모든 연속극의 얼개는 새로운 사랑에 대한 호기심과

지나간 사랑에 대한 뒤적거림으로 가득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림책이다.

그렇지만 전문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서 그림이 뛰어나지는 않다.

그런 점이 오히려 나이들고, 무엇에도 새로운 '하루'를 남기기 힘들 때,

무얼 해도 시들하게 느껴질 때, 그림을 그려 보는 건 어때? 하는 권유가 이 책이다.

 

세상에는 뜻밖에도,

좁아터진 커피집에서 카톡으로 수다를 떨기만 하는 사람 외에도,

틈만 나면 설원으로 나가서 스키나 보드를 타는 데 미친 사람도 많고,(올해는 안 추워서 우짜냐~)

겨울 바다에서도 요트를 연습하는 사람들도 많다.

가방에 술담배가 가득할 것 같은 차림새의 아저씨가 뜻밖에 스케치북을 들고 나와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수첩에 시상을 끄적이기도 한다.

유원지의 배드민턴장에는 숨은 고수들이 가득하고,

곳곳에는 맛집의 숨은 곳을 기가 막히게 꿰고 있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그런 한 세상을 발견하여,

내게 남겨진 날들의 가장 빛나는 '오늘'

그 일을 한다면, 언제 죽는대도 그렇게 후회는 남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 게 잘 사는 일일 것이다.

 

그림 역시 그런 하나다.

돈도 없고, 시간만 많다면...

소질이 없고 솜씨도 없다면, 이 사람의 책을 권한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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