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통신 2005 - 4호                                       부산공고 1학년 기계과 1반


소년을 얕보지 말라


우리 반 친구들에게 쓰는 세 번째 편지다.


1. 너 자신을 얕보지 마라.

고등학교 들어온 지 벌써 석 달이 지나간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너희는 학교에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되었고, 중간 고사도 무사히 마쳤다. 지난 주에는 수련회에도 다녀왔고…. 나날이 지각도 늘고 있고, 꾀병과 정신병으로 조퇴도 늘어난다.

바야흐로, 너희는 ‘工高生’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베든 포우엘의 시, 소년을 얕보지 말라는 글이 있다. 한 번 읽어 보기 바란다.


  소년을 얕보지 말라 

                                                   베든 포우엘

소년을 얕보지 말라.

그 아이의 집이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집이라고

그 아이를 얕보지 말라.

에이브라함 링컨의 집도

통나무 집이었다.


소년의 부모가 무식하다고

그들을 얕보지 말라.

세익스피어의 아버지는

그의 이름조차 쓸 수 없었다.


그들이 보잘 것 없는 직업을

택했다고 얕보지 말라.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도 땜쟁이였다.


신체적 결함이 있다고 해서

소년을 깔보지 말라.

밀턴도 맹인이 아니었던가.


소년을 얕보지 말라.

그들은 인생항로에 있어서

언젠가는 앞장설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고

불친절한 일이고

온당치 않은 일이며

무례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내가 좋아하는 글이다. 그런데 오늘은 너희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그 이유는, 너희 중 많은 수는 스스로를 얕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기 가정의 환경이 친구와 비교해 보니 부족하다고 해서, 나에게 신체적인 결함이 있다고 해서, 내가 앞으로 가질 직업이 보잘 것 없다고 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스스로를 얕보지 마라.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고, 온당치 않은 일이고, 무례한 일이다.

 

2. 약한 친구에게 아량을.

우리 학급에는 서른 네 명의 친구들이 생활한다. 그렇지만, 서른 네 명은 모두 참 다르다. 힘이 센 친구도 있고, 약한 친구도 있다. 말을 험하게 하는 친구도 있고, 말수가 아주 적은 친구도 있다. 겁이 없는 친구도 있고, 겁이 많은 친구도 있다. 교칙을 한 번도 어기지 않은 친구도 있고, 매일 몇 번의 교칙을 어기는 친구도 있다.

바로 이런 곳이 세상이다.

내 주변에는 나보다 나은 면이 있는 친구도 있고, 못한 면도 있는 친구도 있지만, 모든 면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서로 다를 수는 있지만, 인간적으로 <열등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명심 보감에 이런 말이 있다. <착한 일을 한다고 바로 복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재앙은 멀어지고, 나쁜 일을 한다고 바로 재앙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복이 멀어진다.>고. 내가 저지르는 잘못은 반드시 내게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나 하나 좋자고 마구 개발한 환경은 우리에게 재앙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던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친구에게 늘 잘할 일이다. 그것이, 부족한 내가 인정받는 유일한 길이다. 약한 자에 강하고 강한 자에 약한 <비겁자>는 되지 말자.


3. 기타 등등 잔소리.

첫째, 유월 한달은 몽둥이 강조 기간.

흐트러진 너희를 일깨우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아침에 지각하는 사람. 청소하지 않고 도망가는 사람. 무단 결석. 주번활동하지 않는 사람. 수업 시간에 지적받는 사람. 선생님들께서 1기1 수업 들어오기 힘들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것도 몇 사람 때문에. 몸조심해라.

둘째, 기말 고사는 6월 28일(화) - 7월 1일(금).

중간 고사 망치고 부모님께 ‘다음 기회’를 외쳤던 거짓말쟁이들. 정신 차려라.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주제에 변명까지 나불대지 마라. 오직 몸으로 노력하고, 점수로 말하고, 성적으로 반성할 일이다. 다시는 다음 기회란 없다. 부모님 얼굴 떠올리면서 밤을 새워라.

셋째, 수행 평가에 게으르지 말라.

우리 학교는 시험이 쉽다. 반면, 수행평가는 비중이 큰 편이다. 수행 평가를 우습게 보다가는 작은 코 뭉개진다. 과목마다 30-40점이 수행평가로 들어간다. 이미 지나간 것이라도 기본점이라도 받도록 노력해라. 순간의 게으름이 평생을 좌우한다.


4. ‘개구리 법칙’을 떠올려라.

개구리가 뜨거운 맛을 보면 팔딱 뛰쳐나가지만, 미지근한 물에서는 데어 죽는다. 게으름에 물들어 시들어가지 않으려면, ‘나쁜 습관’은 <지금 당장> 정신 번쩍 차리고 내던지기 바란다.


召命 동산에 초여름이 오는 날


게으른 공고생이 되어가는 너희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담임 선생님이 쓴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하진 않지만, 도전하지 않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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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5-31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왜 저는 지난 학교에서 이런 맛깔스럽고 통쾌한 펀치를 날리지 못한 걸까요? 애처럽고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분명 게으르고 핑계대는 것이었는데 말이죠.. ^^ 오늘... 우울한데 잠시 밝아지네요.

글샘 2005-05-3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1교시가 홈룸 시간인데, 이거 나눠주고 잔소리 좀 하려고 하는데... 과연 이 펀치에 짜식들이 나가 떨어질는지... 잔소리하면 알아듣는 놈이 하나라도 있겠죠.

해콩 2005-06-01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한문수업은 각 반마다 두 시간씩이랍니다. 한 시간은 한문이론 수업에 집중하고, 나머지 한 시간은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는 각종 글들을 읽으며 덤으로 한자, 한자어 공부까지 하는 시간이지요. 이름하여 '삶을 가꾸는 글읽기'... 갑자기 제 수업안내라니...생뚱 맞죠? 실은 부탁이 있어서요... 이 글을 '삶을 가꾸는 글읽기' 수업자료로 활용하고 싶어서요.. ^^; 시가 너무 좋아서 아이들에게 소개하고 싶은데 그것만으론 내용이 너무 짧기도 하고 또.. 샘의 편지글은 공고생 뿐만 아니라 저희 학교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듯하여.. 조심스럽게 여쭙습니다. 조심... 조심...소심...황당하시고..당황스러우시죠?

글샘 2005-06-02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업시간에 쓰시다니... 정말 당황스럽군요. 그냥 모르게 살짝 쓰시지... 수업 시간에 쓰는 건, 저작권에도 문제가 없는데... 하긴 이런 편지글 따위로 저작권 운운하는 건 좀... 작년부터 틈틈이 쓴 편지들이 있는데, 편집해서 쓰시든지... 해콩님 자유로하시길...

해콩 2005-06-02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감사합니다~ 모르게 살짝 쓰려고 하다가.. 그래도.. 허락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다음부터는 그냥 살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