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아이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처음 아이들을 가르치던 십여 년 전에, 학급 문고를 만들기 위해 읽고 사 두었던 책 중에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란 책이 있었다. 지금도 초, 중학교의 학급 문고로 인기가 많은 책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난 그 책을 처음 보고 '참, 지저분한 아이도 다 있구나.'하고 생각할 정도로 이상만 앞서고 실제론 무식한 선생이었다.

이 책의 저자 하이타니 겐지로 씨가 어떤 인물이었던지, 난 전혀 몰랐다. 그저 파리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 아이와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라고만 추측할 뿐.

이 책은 하이타니 겐지로의 어린 시절, 그 어둡던 시절의 반추에서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가 만난 여러 아이들의 불행한 삶, 어둡고 행복의 대척점에서도 한참 더 마이너스 방향으로 달려가는 인생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무거운 인생을 짊어진 아이일수록 낙천적이라는 사실을...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아이일수록 상냥하다는 진실을... 그것이 인간 본래의 모습임을 말이다.

그리고는 바로 배운다. 깨닫는 데서 그치는 나와는 다르게, 그는 바로 배워서 체득한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아이가, '뼈야, 너는 나한테 다리가 있는 줄 알고 자라 주었구나.'하는 시를 썼을 때, 그 아이의 낙천성과 상냥한 마음을 읽을 줄 아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하이타니는 한 동안 오키나와에서 지낸 것으로 적혀 있는데, 오키나와는 미군이 진주하고 있어 본래의 생활과 생태를 잃어버리고 비참한 일을 끝도없이 겪었던 일본 안의 오지이다. 그 오키나와에서 그는 사람이 본래 성질을 탐구한다. 그리고 그 낙천적이고 순수한 상냥한 마음씨를 배운다.

창의성 없는 교사의 빈약한 수업이 정말로 공부하고 싶은 아이들을 공부하기 싫은 아이고 만든다고 한 그의 명제는 나를 마음아프게 했다. 나도 그렇지만, 빈약한 수업을 하는 교사들과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은 세상에 수두룩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만난 아이들을 필름을 거꾸로 돌리듯이 되새겨본다.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연습장에 싸서 선물한 아이, 스승의 날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가 집에 파는 팬티 하나를(속옷 가게 딸이었다.) 포장도 없이 들고 그 산중턱의 학교를 뛰어 올라왔던 뇌성마비 아이, 수업 시간에 어머니에 대해 몇 줄 적으라 했는데 아무 것도 적지 않아서 맞았던 엄마 없던 아이, 그리고 그런 걸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던 아이. 숙제를 하지 않았다고 종아리를 다섯 대나 맞고 나서 나를 좋아해 준 아이, 아침 밥상에서 부모가 칼에 찔려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아이, 초등학교때부터 불량한 교우관계를 맺다가, 중3의 나이에 실형을 받고 소년원에 간 아이, 자전거 훔치다가 구치소에서 한 달 여를 썩은 아이, 외국에서 살다 와서 국어를 처음 수 받고 즐거워하던 아이(그 때는 성적 부풀리기가 심하던 때였다.), 고3이 되어 죽자사자 공부해서 내가 모범상을 주었던 날라리 같던 아이, 중학교부터 군대 문제를 고민하던 여호와의 증인 가족의 아이, 어른이 되면 나 같은 교사가 되겠다던 아이(그 아이 성적으로 볼 때, 교사가 되긴 힘들었으리라.), 의사가 되겠다고 사수째 하고 있는 아이...

생각해 보면, 생. 각. 해. 보. 면...

내가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를 숱한 아이들, 하나 하나가 고름을 흘리는 행려병자같은 외모를 하고 있고 보잘것 없는 상황에 처해있지만, 그 하나 하나가 <예수님>인 귀중한 아이들을 난 얼마나 무시하고 지나쳤던지...

그에 비하면 하이타니 겐지로의 글에서 느껴지는 아이들의 상냥함, 치열한 삶에 대한 고찰은 정말 나를 부끄럽게 했다.

늘 작은 일에만 분노한다며,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를 외쳤던 60년대 어느 저항 시인처럼, 부끄러움을 아는 일이 진리를 실천하는 길이라던 수천 년 전 어느 성인의 말처럼, 이런 책들은 인간같지 못한 나를 <인격>의 수준으로 이끌어 주려고 노력하는 책들이다.

선생님이라면, 아니면, 자식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부모들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05-2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일단 혼인부터 해야겠군요....(언제..흐흑)

해콩 2005-05-29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처럼.. 저 역시 먼저 애인부터 만들어야겠는걸요.. (남들이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그 '나이'라는 것이 이젠 장난이 아니라서... --; 흐흑) 사실 아이들과 함께 읽으려고 사 두었어요. 빨리 읽고 싶어지는데요~

글샘 2005-05-30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괜히 마지막 말을 써서 파란 여우님과 해콩님께 상처를 드렸군요.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배울 수 있는 책이기 때문에 애인이 없어도, 혼인하지 않으셔도 의미심장하게 읽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처는 언제나 엉뚱한 데서 입더라고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