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다상담 3 - 소비·가면·늙음·꿈·종교와 죽음 편 강신주의 다상담 3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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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다상담'을 읽거나 들으면,

그의 인문학적 통찰과 철학자의 현실 인식이 정말 뜨겁게 다가선다.

철학자연 하는 자들의 글들의 많은 것들은,

오해를 부르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일반인들이 사회에서 쓰지도 않는 언어를 가지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읽히지도 않는 책들을 마구 쓰면서, 자신들의 성채 안에서 서로 자뻑에 빠진다.

 

마르크스가 위대한 이유는,

당신이 가난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자본이란 이런 생리를 가지고 있어서, 당신은 필연적으로 가난하고 소외당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입니다.

이런 사회적 설명을 붙여준 데 있었다.

 

고민은 개인의 것 같지만,

사실 혼자서 디오게네스처럼 살 수 있다면, 고민이 생길 구석이 없다.

타인은 지옥이라던 실존주의 철학자의 말처럼,

고민은 모두 타인과의 관계, 사회에서 나오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사회는 개인을 가난하게, 왜소하게 비교 대상으로 만든다.

땅에서 나는 곡식은 얼마를 수확하여 얼마를 지주에게 바치고 남는 것이 얼마인지 눈에 보이지만,

자본의 나사를 돌리는 노동자는 자본이 얼마나 투여되어서, 얼마나 사용자에게 가고, 얼마가 노동자에게 돌아오는지 볼 수 없다. 자본이 더 큰 자본으로 뻥튀기 되는 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멋진 상담은 <소비>편과 <종교와 죽음>편이다.

<소비>에서는 자본주의의 생리와 우리의 삶을 정말 쉬운 말로 풀어 준다.

 

그의 말버릇, '다 아시죠? 아시겠죠?' 같은 것들은,

자신이 '보통 사람들도 알아먹는 말로 인문학을 풀어주는 무당'을 자처한 사람이어서,

알아 들으시겠지요? 이런 확인임을 이제 알겠다.

 

삶은 돌아보면 70퍼센트 정도는 우리가 어찌하지 못해요.

이 70퍼센트를 계속 끌고 갈 것인지 말 것인지가 여러분의 숙제예요.

노력으로 안 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남은 30퍼센트에 우린 힘을 쓰지만 이미 주어진 것은 엄연히 나의 현실로 존재해요.

이걸 어떻게 재배치 할 것인지만 주어지는 거거든요.

머릿속에 항상 넣어 놓으셔야 돼요.

그 70퍼센트는 숨길 필요 없어요.

하지만 30퍼센트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책임을 져야 돼요.(166)

 

무려 철학 박사 강신주는 70%라고 했지만,

나는 그 부분이 더 크다고 본다.

한국 사회처럼, 불안정하고 궁핍과 핍박의 역사로 점철된 사회에서,

빈익빈부익부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지표로 보아(자살률 1위, 출산저하 1위, 노인사회 1위, 학생 과외 1위, 노동 시간 1위)

이 사회에 태어난 사람들은 95% 정도를 이미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채우고 나오는 것이나 아니까?

 

그래서 박민규 말마따나 <한국인에게 청춘은 없다>는 위로도 있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배부른 교수의 떠드는 소리는 공허하다.

 

그래서...

힘든 사람들에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 주기 위해,

강신주는 길거리 철학가가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혹여 이 책을 통해 절망에서 희망을 보신 분이 있다면,

제게 절대로 고마워하지는 마세요.

사실 여러분을 통해 저는 제 존재 이유를 발견했으니까요.

여러분이 저를 진짜 철학자로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여러분 때문에 철학, 즉 필로소피라는 학문이 '앎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사랑해야 그것에 대해 아는 학문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람을 사랑해야 사람을 알게 되지,

그 역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 겁니다.(들어가는 말)

 

많은 상담에서, 내담자들은 고백한다.

선생님은 '이혼해.'라든지, '사랑을 하세요'라고 하시겠지요... 라고.

그들은 답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놓여진 좌표가,

세상의 극한,

시련의 절정에 서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놓인 그것임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철학>은 <인문학>이며, <인간 사이의 사회학>일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성리학적 질서>의 수직 관념이 아직도 지배하는 사회이고,(돈에 순 '이 씨'왕조의 유물이 그득한 나라)

그리고 빈익빈부익부의 <소외>가 극대화되고 있는 사회이고,

식민지-전쟁-독재 사회를 거치면서 <어리석은 대중>의 양산에 성공한 사회이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잘못을 <나의 잘못>이라고 여기기 쉽다.

종교가 만연한 것 역시 사회의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오로지 <공부 또 공부>가 강조되는 것 같지만,

사실 학교에서 학생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 오로지 <경쟁 또 경쟁>만 있을 따름이다.

 

강신주가 전하는 진한 위로...

그건 당신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이 사회가 그렇게 생겨 먹어서, 당신은 그 굴레 속에서

조금의 결정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마흔이 넘었다고, 당신 얼굴에 전적으로 책임을 질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고민을 제대로 인식하고,

세상과 맞서 싸울 철학으로 무기한다면,

그리고 제대로 사랑하는 일이, 그래서 내가 행복한 것이 삶의 존재 이유라면,

세상은 슬프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위로를 듣는다면,

강신주 역시 안도할 것이다.

 

강신주의 건강을 정말 진심으로 빌게 만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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