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어바웃 러브
벨 훅스 지음, 이영기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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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대학시절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의 '소유냐 존재냐'도 읽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인생의 행로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삶의 전체를 생각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에 읽고 만 것이다.

 

스무살 정도의 나이에 '사랑의 기술'은 '여자 꾀는 법'의 술수가 적힌줄 알았던 것이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고, 자본의 사회는 인간 존재를 소유의 노예로 만들기 십상이라는 맥락을 읽진 못한 것이다.

 

이제 벨 훅스의 <올 어바웃 러브>라는 거창한 제목의 책을 읽노라니,

다시금 에리히 프롬이 떠오르고, 강신주의 '소비'와 '삶'등에 대한 설명들이 맥락을 같이 한다.

 

남자들은 사랑을 이론화하지만 여자들은 사랑을 직접 실천하는 데에 더 관심을 쏟는다.(19)

여성과 남성이 사랑에 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질 수도 있겠다.(23)

 

남성과 여성은 '마르스'의 화신이나 '비너스'의 화신처럼 화성이나 금성에서 온 것은 아니겠지만,

사회적 입지가 다르며, 사고 방식도 차이가 있을 것이므로 여성의 관점에서 쓴 사랑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아쉬움이 남는 것은,

작가가 미국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이어서, 더 가난하고 낙후된 사회,

특히나 여성이 아직도 부차적 존재로 지위지어진 세계에서는 그야말로 '도무지' 통하지 않을 말도 많다.

 

인간의 해방, 평등화와 사랑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35)

 

이렇게 규정한다.

영적인 성장과 자아 확장.

이것은 그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이라야 가능하다.

1970년대의 가난한 노동자, 겨우 벌어먹는 신세, 회사에서 노조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삶.

이런 조건에서 사랑이란 영적 성장과 자아 확장보다는 성적 호기심조차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정의로움이 없는 곳에서는 결코 사랑이 싹틀 수 없다.(64)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쓰인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상호 존중이 싹튼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92)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 위에 올라 서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달라 보인다.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이런 것이 사랑의 힘이다.

나를 으쓱으쓱하게 만들고,

네 어깨 위에서 나는 강하다. '

내가 존재해왔던 어떤 상태보다 더 상승된 존재감을 느끼게 해준다. 사랑하는 너는...

 

영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영원 불변의 법칙 - 즉, 사랑이 모든 것이고 사랑만이 우리의 진정한 운명이라는 것- 을 받아들이는 것.(116)

 

강신주의 다상담을 읽노라면,

자본의 세계에서 소비의 존재로 살아가는 존재들의 비루함을 깨닫게 된다.

거기서 사랑만이 인간의 존재감을 고양시켜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끝없이 하는데,

사람들이 처한 위기를 상담해 주는 그의 인문학적 노력이 참 눈물겹다.

 

자본의 세계에서 자칫 사랑은 서로에게 무한한 상처를 남긴다.

소비의 환상을 키우는 꿈과 욕망의 전차는 어린 아이들부터 괴롭혀서,

청춘 남녀를 제대로 사랑하도록 하지 못하도록 가두는 역할도 한다.

그게 다상담의 존재 이유이며, 그 강의의 존재 가치다.

 

사랑의 결핍으로 초래된 극심한 공허감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새롭게 배울 때 완전히 채워질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이 중력처럼 실재하는 힘이며,

매 순간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결코 환상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어야 한다.(201)

 

하지만 인간은 종이 조각에 불과한 <자본>또는 <지폐>를 믿는 매직의 세계에 살고 있다.

두려운 미래는 '울면 안돼, 선물을 안 주신대' 하며 꾀는 <종교>의 매직에 맡기고 생각을 놓는다.

 

영혼으로 연결된 커플은 어떤 이야기든 허심탄회하게 함께 나누고

가장 깊은 차원에서 서로 교류하려고 한다.

이처럼 깊이 있고 통찰력 넘치는 대화는 서로에게 완전히 솔직하고 마음을 열어놓아야만 가능하다.(235)

 

며칠 전, 어떤 연예인의 아버지가 자신의 부모의 생명을 멈추게 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

여느 연예인의 방황과 자살과는 다른 충격을 준다.

인간의 존엄성을 정면에서 바라보게 한다는 면에서, 이 사건은 사회 문제와 결부하여

인간은 어떨 때 존재하는 것이고, 어떨 때 존재감이 없는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영혼으로 연결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루려는 많은 노력들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다.

이처럼 통찰력 넘치는 사람들끼리 수많은 접촉을 통하여 마음을 열고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 속에서 참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게 되면, 이미 익숙해진 친밀한 세계로부터

소원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혼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과 교류하기보다는

차라리 고독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바빌론 같은 향락과 악덕의 도시에서는 아무도 외롭지 않은 법이다.(237)

 

사랑하지 않을 때,

모두 앓고 있지만 누구도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사랑은 남녀간의 애정에서 시작해서, 인간 공동체에 대한 문제까지를 포괄한다.

그런데, 진정한 사랑 속에 있다면,

이미 자기가 침윤되어 고독과 고통을 느끼는 가족, 친지, 친구, 동창, 직능 모임 등등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정리가 돼야 해요. 쓰레기 같은 관계들이 정리되고 빈손이 되어야 다른 걸 잡는 거예요.

 

강신주는 쓰레기 같은 관계들이라고 파괴적으로 말했지만,

클럽에서 흔들면서 외롭지 않다고 외칠 수 있는 나이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사랑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

라는 쉽지만 실천이 어려운 이야기는

진정 좋은 사람과 함께할 때 온몸에서 느낄 수 있는 자기장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 '의지'는 의도적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란 '의지'는 '자발적으로' 헌신하고 희생하고 싶은,

그야말로 다 주고도 아직 주지 못한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일 때,

영적인 성장과 자아의 확장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이성에 대한 성적인 관심이었던 미성숙한 시절에 에리히 프롬을 읽는 일은 하나의 씁쓸한 추억일 따름이다.

세상을 좀 살고 보니,

사랑이란 것은 삶의 의지이며,

우리를 흔드는 세상에 대한 의지를 가진 저항일 수도 있음을,

그래서 하이데거가 이야기한 것처럼,

'불안'의 존재가 '기획투사'하며 노력하여 살아가는 '의지적 힘'이 되는 것이 사랑임을 조금은 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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