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희한한 세상이다.
영화 변호인이 개봉한 지 3주도 안 되어 천만에 육박하는 관객이 몰려들었다.
영화가 동원한 게 아니다.
관객이 쇄도한 것이다.
그 불쾌한 영화를 보러 관객들이 왜 몰려갔을까?
방송국이 무시무시하게 많이 늘었다.
조중동도 텔레비전 방송에 마구 나온다.
이런 시대를 거슬러, 대자보가 유행이다.
언론의 자유가 없는 시대의 반영이다.
정봉주 전 의원이 반인반깔의 본성을 드러내고 전국구 팟 캐스트를 열었다.
가카가 감옥에 갈때까지 하겠다고... 너무 겁을 줘서 국가 기관에서 대선에 조금 간을 쳤는데,
감옥까지 보내 놨는데, 다시 민영화 등의 이슈를 이야기해준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이 무서운 시대엔 라디오가 대세구나.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박통이 신년 방송을 탔다.
그간 옷이나 많이 샀지 뭘 했나 모르겠는데,
무지 암기해서 잘 지나간 모양이다.
불행했던 1년은 지나가고, 이제 행복한 3년을 보장한단다.
가카를 믿어야겠지?
행복하게 해준다니...
아는 사람은 안다.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은 안다.
왜 사람들이 불편한 마음으로 변호인을 보고 잠못드는 밤을 보내는지...
왜 다시 대자보의 시대, 라디오의 시대로 회귀했는지...
왜 기자앞 발표가 그리도 매끄럽게 자~알 마무리 되었는지...
각자의 자리에서 곱씹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대학 시절로 돌아가 두려웠다.
폭력 고문 경찰들은 반성하지 않고 당당하게 가스총을 든 '보수단체 회원'이 된다.
그래서 시국 미사 신부님을 겁박한다.
<정규직 국가 기관>의 폭력에서 <비정규직 알바 어버이 연합>의 폭력으로 무늬만 바꿨다.
삶이 참으로 버겁다.
영화 내용 중, 바위를 계란으로 치는 대사가 있다.
저들은 바위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육사 시인의 '절정'의 한대목이 어울린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일제강점기의 '절정'에 쓴 시.
절정 다음은? 결말이 온다. 아무리 절정이 혹독해도 결말은 온다.
그리고 혹독한 겨울은 스러지게 되어있다.
무지개처럼...
비록 지금은 강철로 된 무지개처럼 강고해 보일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