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 - 개정판 다빈치 art 12
이중섭 지음, 박재삼 옮김 / 다빈치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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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살다 간 비운의 천재

 

일본에서 그림을 공부하다 마사코를 만나고,

해방된 조국에서 마사코와 사는 일은 '친일파'로 규정되어

부산에서 제주도에서 비극적 삶을 살다가 마흔에 별은 진다.

 

영양실조와 간염, 정신 이상으로 인한 거식증...

한 시대가 천재를 삼킨 것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이 실려있다.

작지만 그의 그림들도 많아서,

이중섭의 그림이 지닌 색감들, 필선의 살아있는 역동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그의 황소 그림들은 오래 지켜보게 된다.

슥슥 그은 선들이 아주 속도감이 느껴지는데,

그 힘찬 선들과 면들이 어우려져

벅찬 생명력이 약동하는 그림이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마음이 든다.

 

제대로 된 화구가 없던 시절에도,

은박지에 그린 그림들을 보면,

그의 그림이 도달한 한 경지를 읽게 된다.

 

아이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

이런 것들을 가녀린 영혼 한 포기를 시들게 해버린 시절.

 

만나지 못하는 아내를 기다리며,

그는 '나의 살뜰한 사람, 나 혼자만의 기차게 어여쁜 남덕 군'에게 편지를 쓴다.

결국 그는 죽어서나 유골의 반쪽이 일본의 아내에게 전해진다.

 

나만의 남덕,

이 대향이 힘껏 안아 줄게.

조용히 눈을 감고 나의 가슴속을 들여다보며

나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이 노래하는 사랑의 노래를 들어 주오.

남덕은 이 대향의 것이오.

나는 당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해야 좋은지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소.

나는 소중하고 소중한 당신의 모든 것을 어루만지고 있소.

그 포동포동한 당신의 손으로 대향의

큰 몸뚱아리 모든 곳을 부드럽게 몇 번이고 어루만져주오.

더욱 힘껏 꼬옥 안읍시다.(59)

 

만날 수 없어 편지로 사랑을 나눌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런 절절한 편지를 쓰는 한 남자의 심사가 어떠하였을는지,

생각만 하여도 심장이 저린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내가 만난 이중섭, 김춘수, 부분)

 

한 화가의 고독한 영혼이 시에서도 읽힌다.

크기도 맞춤하고 그림도 멋진 이 책을 한동안 쓸어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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