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간다 창비시선 366
이영광 지음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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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위 곳에 왜 날

낳아놓은 거야

딸이 어미에게 대든다

채널을 돌린다

사람 말고는 누구도

이따위 곳이라고 하지 않는다

누의 살점을 찢고 있는 사자 무리 곁에서

누들이, 제 동족의 피가 튄

풀을 뜯고 있다

울지도 웃지도 않고

먹는다

식사가 끝나자 누도 사자도

발아래 이뚜위 곳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피 좀 본 거로는 꿈쩍도 않는

노란 지평선을 본다

어쩌다 사람만이 찾아낸

분노의 거주지

혼돈의 부동산

이따위 곳 (이따위 곳, 전문)

 

인간이 세상을 '이따위 곳'으로 만든 행위를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가 문제다.

땅을 부동산으로 만든 그 행위가 인간과 인간 사이를 '계약이론'으로 설명한다.

로크인지 루소인지

사회계약론이란 말을 만든 그 시대는

이미 인간을 '자연이라는 생태계' 속에서 똑 떼어 낸 것이다.

 

이 시집에서 가장 서글픈 시는 단연 '천안'이었다.

아직도 수중 고혼이 되어,

그 수중 고혼은 차가운 그 3월 바다에서 영웅으로 일컬어짐으로써,

전쟁과 하등의 관계도 없던 영혼들이

군인이란 이유로 편안한 죽음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

그 이름을 둘러싸고 다시 '부동산'처럼 이름을 붙이는 자들에게 벼락 떨어지라~

 

 

어뢰였으면, 차라리

수중 폭발로 인한 버블제트였으면

전광석화의 두 동강이었으면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전쟁이 나건 말건

69시간이 아니라 6.9분이었으면

6.9초였으면

 

중계방송 따위가 없었더라면

구조 없는 구조 속보가 안 들렸더라면

사고든 사격이든 사기든,

깊은 사색이든

 

뭘 밝히는 중이냐

뭘 덮는 중이냐, 상관없이, 나라?

서해가 마르고 닳건 한반도가 가라앉건 그 나라가 망하건 말건

숨 없는

한 순간이었으면

 

아비규환이 될 겨를도 없었을 0.69초였다면

유령이 될 수도 없었을

0.069초였다면

섬광이었으면 그냥,

끝이었으면

 

육백구십일 같은

육십구년 같은

69시간만 아니었다면

69시간이라고, 알려주지만 않았더라면

 

하늘 아래 가장 안전한 곳,

天安에 내려야 하는데

天安을 지나쳐야 하는데

초청 강연도 시와 트라우마도,

빗줄기도 참이슬 후레쉬도 아우성도 다 함께

 

天安에 내려야 하는데

天安을 벗어나야 하는데

天安에 닿아야 하는데 (천안, 유령 5, 전문)

 

 

국가?

웃기고 자빠졌다.

국가가 목숨을 지켜줄 때 이야기지,

이렇게 목숨으로 장난칠 땐, 차마 말도 못 꺼내게,

'천안함 프로젝트 영화'를 메가박스에서 하루만에 내릴 때,

하늘도 편안히 쉴 수 없었다.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해야 할 곳, 천안...이라는 이름을 달고...

죽어서도 정치 사이에서 오물에 뒤덮인 이름이 된 그 배,

PCC-772

국가가 죽음을 덮는 암흑 속...

유령만 떠돌 뿐...

 

경제는 신기루 같아도 경기는 뼈에 사무치니(오일장, 부분)

 

사람 사는 일은

환한 대낮 같은 어둠 속을

여럿 손잡은 듯한 홀로

저기 보일 듯한 사막 속을 걷는 일

 

온갖 아홉 시 뉴스는 백성의 눈을 가리지만,

그 폐해는 뼈에 사무치니,

참으로 뼈가 시린 날들이니...

 

이렇게 말의 절간에서, 言 寺

시라도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 詩

그 마음 어루만져 주는 종교인들을 '종북'이라네.

그래, 마음을 어루만져 그것이 종북이 된다면,

성스러운 종북에 몸을 바칠 일이다.

 

따를 종, 북녘 북, 從 北

북녘의 비인도적 소비에트 괴뢰 도당 빨갱이 사탄의 무리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욕을 퍼붓건만,

어찌 내 귀에는 그것이 쇠북 종, 鍾 울림이거나,

둥둥거리며 혼백의 넋두리 갈앉히는 푸닥거리의 북소리마냥 들리는 것이냐...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사랑의 발명, 전문)

 

사랑이 뭣하는 놈인지,

배부른 자들의 8시 연속극 놀음인지,

한숨만 나올 때,

그래. 사랑은 이럴 때 쓰는 거다.

사람이 닳고 닳아

심장이 닳고 닳아

애달아할 때,

그 뾰족한 미음(ㅁ) 모서리에 내 마음 모서리를 닳게 해서,

조금씩 조금씩

'아무리 빨리 갈아 대도 느리게'

그렇게 갈아서 만드는 이응(ㅇ)이 사랑이다.

 

 

사람은 정말 질 수 있는 걸까?(시인의 말 중)

 

시인이 쓰고 싶었던 한 마디는 이것일 게다.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의 정황이 포착되었다.

개표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개입한 정황도 많다.

그러나 국가 기관인 '선관위'와 '국정원'은 청와대 치마폭 뒤에서 젖병을 물고 있다.

박근혜란 개인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한나라당 ㅋ~ 얘들이 꾸밀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이건, 국가라는 '기관'이 저지르는 일이다.

국가가 '사람'에게 이기려고 드는 일이다.

헌법도, 윤리 도덕도 다 짓밟고

형체도 없는 유령같은 나라가 '사람'에게 이기려고 든다.

 

사람은 정말 질 수 있는 걸까?

 

깊은 물음이다.

한석봉이 어머니의 떡써는 소리에 떡실신 되었듯,

시를 읽는 사람이라면,

이런 한 마디에 입을 다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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