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창비시선 369
권혁웅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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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아주 독특하다.

그래서 시집 제목이 될 법한 시를 보려고 하다가,

맨 앞에 놓인 시를 보았다.

참, 매력적이었다.

 

조바심이 입술에 침을 바른다

입을 봉해서, 입술 채로, 그대에게 배달하고 싶다는 거다

목 아래가 다 추신이라는 거다(糊口)

 

그래서 다음엔 '애인은 토막 난...'을 읽었다.

한 세 번을 읽었다.

시가 토막, 토막...

애인이 우는 것과 토막 난 순대는 도무지 무슨 '유사성'이 있다고,

저렇게 '직유법'을 쓴 건지...

 

비유란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과

시인이 주워온 보조관념 사이에

독자가 무릎을 치며 탄복할 만한 '유사성'이 있을 때,

비로소 성공하는 것이다.

 

머릿 속의 복잡한 흐름들을,

토막, 토막, 순대처럼 잘라 준다고,

독자들이 먹지는 않는다.

 

언어 유희는 시를 만들 수 있는 일부분이다.

언어 유희와 비유법이 절묘하게 결합되었을 때라야,

비로소 유기적으로 힘을 얻게 되는데,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많은 유기물을 먹으러 갔던 시인을 만났지만,

그와 술을 한잔 하고 싶진 않았다.

재미있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그와 술을 마시고 싶진 않은 거다.

술은...

마음이 통~해야~

술잔 부딪는 소리만으로도~

이미 그 싸~한 맛이 저릿저릿하게 뇌세포를 행복하게 하는 거 아닐까?

 

 

참이슬 먹은 그대 눈에 더러운 이슬이 맺혔다(조마루 감자탕집에서)

 

김밥들이 가는 천국이란 어떤 곳일까,

멍석말이를 당한 몸으로

역모를 꾸민 것도 아닌데 잘게 토막이 나서(김밥 천국에서)

 

철들기 전에 영어를 배웠다 담장에서 배웠다

미선이는 내 거다 건들지 마라

‘mine’은 광산이란 뜻이었다 여자는 노다지였다

중학교 때 화장실에서 알파벳을 다 외웠다 대문자로 외웠다

알파벳은 WXY로 끝나는구나

스승은 세로쓰기를 했다 삐뚤빼뚤했다

영어를 잘하니 여자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고등학교 때엔 A

뒤집힌 양날도끼에서 왔다는 걸 알았다

감탄사였다 아이들은

손에 잡히는 건 무엇이든 무기로 썼지만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여자가 도처에 있었다

대학 때 처음 포르노를 보았다

남자나 여자나 퍽을 입에 달고 살았다

‘fuck’매우란 뜻이었지만

남자가 쓰면 욕, 여자가 쓰면 사랑이었다

사회에 나와서야 BC를 제대로 이해했다

나는 여태껏 문법도 모르고 살았구나

부자 되시라고 여자가 속삭였지만

봉급날은 결제일과 함께 왔다

세계화와 여성상위 시대,

어디나 영어와 여자가 있었다

여자에 사로잡힌 영어의 몸,

그게 나였다(영어 조기교육에 관하여)

 

 

 

어머니에게 목 디스크가 왔다 하필이면 오른손에 왔다

새벽 기도 20년만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되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깜깜 어둠이 악수를 건네려는 건지,

사방이 인적 끊긴 놀이터가 되었다

이제 단풍놀이 가는 버스 안에서 막춤을 출 수도

고스톱 치며 상대가 싼 거 먹을 때

마음의 박수를 대신해서 따귀 소리를 올려붙일 수도 없게 되었다

어머니에게 목 디스크가 왔다

행주 잡은 손으로 플러그를 뽑은 것처럼

스치기만 해도 저릿저릿하다고 한다

처음 집 앞 놀이터로 아버지가 찾아왔던

57년 전과 똑같다고, 그때 스친 손끝 같다고 한다

다소곳한 고개를 다시 들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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