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라는 뼈 문학과지성 시인선 369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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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의 '마음 사전'을 참 좋아했다.

어떡하면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살뜰히도 살필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의 빛깔을

그렇게 빗질하듯

그것도 한방향으로가 아니라

염색할 때 한올도 놓치지 않으려

이런저런 방향으로 훑어내려가듯,

마음의 빗질을 해서 건져낸 언어들로 살아있는 '사전'이었다.

 

바닷가에 가면 '비치 콤'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한다.

여름 한철이 가고 나면, 바닷가 모래사장에 온갖 쓰레기와 함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것들도 흘리게 마련인데,

해변을 빗질하듯 훑어 보석 같은 것을 찾는 사람들...

 

마음을 빗질하면 어떤 것들이 걸려 나올까~

 

그런데 그의 시집은 뼈가 있는 눈물들로 튀어나온다.

그래. 삶이란 눈물투성이이며, 그 눈물이 그저 스러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뼈를 가진 어떤 생체가 마음 한켠을 묵지근하게 하는 그런 것이었으리라.

그래서 그는 그 마음을 빗질하고 또 빗질했으리라.

 

마음이 아무 것도 없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다면

바람결같은 것이라면,

빗질 끝에 아무 것도 남지 않았으련만,

그의 빗질에 걸린 눈물은, 뼈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눈물은 생체다.

 

목덜미에는 입술

허리에는 두 팔

등 뒤에는 매미처럼 당신이(그리워하면 안 되나요, 부분)

 

마음의 욕망은 늘 여전하다.

다만, 현실 속 생활은 거울처럼 욕망의 저편에 서있어 닿을 수 없는 아련함으로 가득할 따름

 

창창한 입사귀를 부비고

울울한 잔가지를 부딪쳐서

차분한 소리를 내어주어 고맙다

 

네 육체에선

소쇄원에서 듣던

그 소리가 난다(너라는 나무, 부분)

 

이런 감성의 시인에게 주어진 삶은 역시 현실.

 

위로이리라, 수백년을 더

서로에게 가지로

닿아도 된다는 건(라이너 쿤체, 위로 중)

 

소원이라고 하자

그것은 두 발 없는 짐승으로 태어나 울울대는

발 대신 팔로써 가 닿는 나무의 유일한 전술

나무들의 앙상한 포옹(너를 이루는 말들, 부분)

 

그의 마음들은 가지로 벋어있다.

그 가지가 다른 가지에 닿는 전술로

위로를 얻는 시인의 마음은 소금밭일지도 모른다.

 

신형철이 이렇게 덧글을 붙인다.

 

소연의 시는

소이연(所而然)의 시 - 그렇게 된 일이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적는...

 

시인에게 최고의 찬사가 아닐는지...

 

 

딱지를 긁어내는 것이 손톱이 아니라 혀일수도 있다

흘러내리는 붉은 것이 피가 아니라 달콤한 딸기과즙일 수도 있다

 

뜨겁거나 차갑지 않기 때문이다 꿈틀대다 출렁이고

솟구치다 철철 넘친다

 

피부를 혀로 핥는다는 것과 껍질을 손톱으로 긁는다는

것의 차이 손놀림과 혀놀림의 차이

차이의 삐걱거림

 

당신은 입이 아니라 팔을 벌려야 하리라

당신은 속옷이 아니라 가면을 벗어야 하리라

 

말의 덩어리가 번져간다

말의 껍질이 틈새를 벌린다

말의 젖꼭지가 아리다(말과 당신이라는 이상한 액체, 전문)

 

 

상처에 딱지가 아물어 가면,

지독한 소양증이 찾아온다.

그 간지럼은 급기야 딱지를 뜯게 만든다.

그런 욕망도 드물다.

 

시인에게 '당신'은 그런 '소이연'이다.

'시' 역시 그렇다.

 

혀로 맛볼 수 있는 당신은 역시, 당신이 아닌 소이연으로,

당신은 가면을 벗어야 하지만,

아무리 혀로 당신을 맛보려 한들,

젖꼭지만 아릴 뿐,

핵심에 닿는 일은 아득할 따름인 느낌을 쓴 시 같다.

이런 시를 읽으면, 딱지도 없는 심장이 마구 가렵다.

긁을 수도 없는 소양증...

 

 

시는 모른다

계절 너머에서 준비 중인

폭풍의 위험수치생성값을

모르니까 쓴다

아는 것을 쓰는 것은

시가 아니므로(모른다, 부분)

 

이 시가 마지막인 소이연...은 작가의 말 대신, 고백이리라.

 

신형철은 시 해설 대신 이런 뜬금없는 얘길 한다.

 

어느 기녀를 사랑한 선비.

기녀가 말한다.

100일을 내 문 앞에서 지새우면 님의 사람이 될게요.

나날을 지새운 선비.

99일째밤, 그 자리를 떠난다.

 

이런 여운이 남아야 이야기고, 시라는 걸까?

 

  암늑대가 숲속에서 바람을 간호하는 밤이었대. 바

람은 상처가 아물자, 숲을 떠나 마을로 내려갔대. 암

늑대가 텅 빈 두 손을 호호 불며, 우듬지에 앉은 지빠

귀를 올려다보는 밤이었대. 섭생을 위해서 살행을 해

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늑대 이야기에, 한 아이는밑

줄을 긋고 있었대.

 

  바람을 간호하던 암늑대의 긴 혓바닥이 나뭇가지처

럼 딱딱해질 때, 비로소 아이는 늑대의 섭생을 이해

하는 한 그루 어른이 되는 거래. 그때 바람은 떠났던

숲으로 돌아가지 못해 더 큰 목소리로 운대. 눈물이

사라진 어른들을 믿을 자신이 없어.(눈물이라는 뼈, 부분)

 

그래.

그리지 않고 그리기.

 

눈물의 뼈를 그리기.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힘이라고...

 

이런 것이 시를 쓰는 힘이란다.

소이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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