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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서재 - 길에서도 쉬지 않는 책읽기
이권우 지음 / 동녘 / 2013년 10월
평점 :
여정은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이지만, 그 자체로 보상이다. <스티브 잡스>
리뷰쟁이 이권우가
독특하게 여행에 관련된 책을 모아 읽고 리뷰집을 냈다.
여행이라 하면,
일단 가서, 사진을 찍고, 풍경을 찍고, 사람과 민속을 읊조리는 기행문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권우의 독서는,
보통의 여행담에서부터 역사를 훑어내는 여행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여행의 세례를 맛본 경험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래서,
이 책은 이전까지의 이권우의 박학다식, 다양다종한 리뷰집을 읽을 때처럼,
풍성한 미각을 모두 충족시키기엔 부족했다.
이 책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온갖 풍미로 가득한 식탁을 기대했다가,
한쪽 취향의 독특한 식탁을 만난 실망감 정도~
그렇지만, 배를 두들기며 일어설 때는,
또하나의 경험을 만족하며 일어선다.
어젠가?
직원 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자리를 둘러보니,
미국인 원어민 교사 혼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0.5초 당황. ㅋ~
5명이 앉은 자리에 가서 끼어앉을 것인가, 그 원어민을 구출해 줄 것인가.
결국 난 소심하게 원어민 앞으로 가서 앉았다.
뭔가 말을 하면서 밥을 먹어얄 텐데,
마침 국수가 나와서,
화이트 누들, 더 푸드 오브 웨딩 세레모니~
이러면서 국수 문화 전도사처럼 이야기가 가버렸다. ㅋ~
칸지데~(이건 일본어~)
화이트 앤 헌드레드, 세임 프러넌세이션~
흰 백, 일백 백.
누들 심볼라이즈 롱 라이프, 앤드 퓨어리티~~
뭐, 중얼거리면서도 그 원어민은 잘 알아 듣는다는 걸 확인했다
미국엔 결혼식 음식이란 게 특별히 있느냐 물으니, 특별한 건 없단다.
행간이 많고 품이 넓은 원작을 번역할 때 좋은 문구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까닭은 외국어 능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번역자가 모어의 풍부한 가능성을 충분히 체득하지 못한 까닭에 문장을 성숙하게 형상화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괴테는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언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의미에서 외부의 맥락과 부딪히는 와중에
내가 모어 사회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35, 윤여일의 '여행의 사고 셋' 중)
원어민과 이야길 하노라니,
당연히 그가 낯설어할 우리것을 이야기해야하는데,
그는 일본에서도 8개월 살았고, 한국의 경주도 가봤다고 그러는데,
제주도를 가보고 싶고, 중국도 가보고 싶다는데,
막상 언어가 안되는 것도 안 되는 것이지만,
설명할 내용의 컨텐츠에서 막히는 일이 더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외부와 부딪히면,
내가 얼마나 부족하고 몰랐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여행은 그렇게 낯선 곳에서 끊임없는 질문에 부딪는 시간들이니,
잡스 말처럼, 여정 자체가 보상이 될 수도 있다.
죽음을 앞두고,
연명치료보다 죽음에 맞선 여행을 한 사람이 있다.
내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이란,
당신에게 기쁨과 충만함을 가져다주는 일에 첫 발걸음을 떼라는 것이다.
비록 당신의 소원이 가까운 사람들의 눈에 턱없이 미친 짓으로 보인대도 상관없다.
시작하기만 하면 이미 당신 내면에 있는 예감하지 못했던 능력이 깨어난다.
굉장한 만족감과 행복감이 당신을 사로잡으며,
당신의 삶과 병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는다.
당황스러운 모든 일도 자신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또 받아들임으로써 최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야 큰 충족감과 깊은 내적 평온을 찾을 수 있다.(86, 쿠르트 파이페,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 중)
죽음 앞에서,
사람은 다른 모든 가치가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살아있음은 곧 '느낀다'와 동의어이다.
느끼지 못하고,
피곤해, 지쳤어, 힘들어, 짜증나~ 이런 날들은 살아있는 날들이 아니다.
온 몸의 감각 기관을 활짝 열어 펼치고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나름대로 생존하기 위해 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온갖 투쟁들이 이토록 모두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이다.
(154, 다니엘 에버렛,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 중)
자연을 스쳐지나가며 차창으로 볼 때와,
발 끝에 채이는 꽃들과, 코를 간질이는 향기로 만날 때는 삶의 여정이 다를 것.
남미 여행을 다니면서,
한국의 노동운동, 학생운동의 한계와 공동체 커뮤니티 붕괴에 대한 이야기를 얻기도 하고,
미국을 다니면서,
신자유주의 광풍이 대학을 장삿속으로 밀어넣는 현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꼭 낯선 곳, 자연 속
이런 곳이 아니어도 여행은 여정을 가지고 의미를 줄 수 있다.
강상중의 도쿄 산책자, 생일에 받은 책인데,
아직이다.
이렇게 다음에 읽고 싶은 책을 생각나게 하는 독서의 여정도,
여정 자체가 온 감각을 춤추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