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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나무 ㅣ 창비시선 368
정희성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평점 :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그리운 나무, 전문)
참 시가 멋지다.
그리운 마음을
벋은 나무가지 하나에 얹어서 표현하다니...
이런 시인을 우울하고 화나게 하는 것이 세상이다.
평화의 시는 평화라는 말 한 마디 없이도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할 터.
나는 거기서 너무 멀리 있다.
내가 사는 시대가 그러하듯이.(시인의 말 중)
시대가 평화롭지 못한데 시만 평화롭다면, 위태롭다.
그래서 정희성의 시는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현실에 한켠을 적시고 있다.
현실에 젖은 리트머스 시험지는 푸른 빛을 붉은 눈물로 바꾸기도 하고,
붉은 현실을 푸른 들판으로 변화시키기도 하면 좋으련만,
시는 힘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파르르 떨면서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느끼기만 하는 것이다.
내 눈을 뜨게 해준 사람
망막 뒤에 가려진
참세상 보게 해준 삶...
그는 나를 장애로 만든 사람
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사람.
미워해서는 안될 사람!(눈 밝은 사람-리영희, 부분)
눈감고 싶은 현실,
눈돌리고 싶은 현실을
눈뜨게 해준 지성의 스승에게 바치는 헌시다.
아아, 묵침의 님이여
이 나라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묵침의 님, 부분)
한 시대가 이렇게 가는구나
나더러는 조시나 쓰라 하고
김근태가 또 먼저 갔다(그대를 잊지 못하리, 부분)
주여 용서하소서
그가 왕이 되었으니
나는 평생 역적으로 살았습니다(고백, 부분)
그가 누굴지... 알만한 세상.
현실은
날마다 눈물
피눈물
피바다
거기서 눈돌린 시는 시가 아니다.
거기서 눈 돌릴 수 있는 돌덩이 마음을 가진 이는 시인이 아니다.
빛 고운 이 낙엽 나라
가을은 얼마나 깊은가
아름다운 이 세상 보았으니
그대 향한 이 마음과
좋은 시 한편 쓰는 일 말고
무엇이 나에게 더 남아있겠는가(가을 엽서)
편지를 '엽서'라고 표현한 사람은 시인이다.
낙엽에 글을 썼을까? 일본어로도 하가키는 잎에 쓴다~는 뜻인데,
그래.
우리말 '깊은'은
사람 마음도,
숲도, 가을도 다 깊어지게 만든다.
깊어가는 가을,
그리운 나무에서 떨쿤 낙엽 하나 주워
엽서를 쓰자.
시를 쓰자.
분노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