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난,쏘,공의 한 부분을 가르치다가...

다시 이 책 전체를 읽게 되었다.

 

열두 편의 소설은 각각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30년도 더 전이다.

공간은 서울의 한 철거촌과 은강이라는 가상의 항구도시...

 

그러나, 이 소설 속 알레고리는 지금도 유효하다.

 

권력자와 결탁한 가진자들.

그리고 못가지고 다 빼앗긴자들.

그 대립항의 간극은,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가까워져가는 것이 아니라,

아스라히 멀어져서,

도저히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여기기 힘들 정도로 낯설어지고 말았다.

 

마치,

1950년대의 혈육간의 정을 못잊어 통일의 염을 잠시도 잊지 못하던 시대가 흘러서,

이제 통일은 금전적 문제나 경제적 사정에 따른 외교적 사무로 변질된 것처럼,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교섭 조차도,

섣불리 손대기 힘든 그곳으로 옮겨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 땅에선 '노동'이라는 '가치 중립적' 용어를 두려워한다.

'근로'(사용자의 맘에 맞게 열심히 일만 하는 착한 존재)자에게만 밥을 주고 싶은 것이다.

근로자는... 사용자의 구미에 맞는 취향의 노동자다.

그걸 '노동자'로 부르면,

은강의 '살인자' 난쟁이의 큰아들처럼,

함부로 가진자들을 짓밟으려는 눈빛을 빛내기라도 할 듯...

 

영희의 팬지는 키가 너무도 작다.

고물상에서 가져온 줄이 하나 모자라는 영희의 기타는 참으로 초라하다.

 

아직도 세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평면이 3차원의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주어진 하나의 의미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클라인 씨의 병처럼,

3차원이 4차원으로 접어드는 그런 시간과 환경이라면,

그제서야 난쟁이들은 지옥에서 천국을 꿈꾸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난쟁이라서,

꼽추라서,

앉은뱅이라서,

천성적으로 그렇게 타고난 환경 때문에,

세상을 낮은 곳에서 살아야 하는 곳이라면,

참 비루한 땅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을 해야할까?

 

그것조차 고민하지 못하도록,

산소 흡입구조차 틀어막으려는 세력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없애고, 한국사 교과서조차 자기들 맘대로 쓰려 한다.

 

그래.

난쟁이 일가의 이 역사책은,

언젠가 스르르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겠다.

 

그걸 바라는 자들은 득의 만만하겠지만,

지금도 그들은 두려워할 것이다.

천안함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부정투표를 손바닥으로 가리려 하지만,

그 손바닥 너머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지만,

그 손바닥을 치워버리면 뭔가가 있단 걸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세희가 세상에 치를 떨며 썼을 이 소설을,

30년이 더 넘이 읽는데도.. 아직도 치가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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