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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그리스에 길을 묻다
이윤기 지음 / 해냄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그리스 신화에 얽힌 이야기들을 현대 문화들에 비춰보려는 의도로 쓰인 듯 하다. 그리스 신화에 쓰였던 이야기들이 상징하는 바를 나름대로 해석해내려는 의도는 의미있어 보이지만,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권인 그리스 사람들의 원형적 심상은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사는 세계인인 그에게는 유의미할는지 몰라도, 내겐 별로 그렇지 않은 이야기들도 많았다.
이 책은 제1부. 신화에 길을 묻다. 제2부. 역사에 길을 묻다. 제3부. 현장에서 길을 묻다고 구성되는데, 제1부의 이야기들은 신화를 현대적으로 조명한 새로운 시도로 이 책에서 제법 읽을 만한 부분이다.
메두사를 거울에 비쳐서 파멸시킨 페르세우스를 수퍼맨에 대입한 것은 멋진 시도다. 그리고 그의 이 글들이 <에두르다 정곡을 찌르는> 수사법에 많은 비중을 둔 것도 그럴 듯 하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의 인물들, 신화속의 이야기들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유명하고 일상적인 것일지라도,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간극을 지우기엔 이야기들의 소재가 다소 까다롭기도 하다.
세계의 다양한 현장들을 다니면서 의미있는 소재들을 선긋기로 이어주는 그의 능력은 탁월하다. 그의 기호학적 취향도 재미있다.
오스트라키스모스. 도편추방제 이야기에서 : 스스로를 추방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을 강화하라. 영원히 추방당하지 않으려면...
헤라클레스 : 세상 떠날 때가 되자 그는 스스로 만든 화장단으로 올라가 그 불길에 타죽는다. 어제의 영웅이 오늘 순교하지 못하면 내일은 폭군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 위대한 헤르메스(전령)의 시대에 "나는 무엇을 무엇으로 바꿀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는 그의 질문은 그 소재들이 다소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