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제주도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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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여자, 돌의 섬 삼다도...

역시 유홍준이었다.

 

제주를 사랑하는 체 하는 글들을 읽으며,

아름다운 자연과 풍부한 문화 유산, 제주도의 풍습과 언어, 올레길...

이런 것들로 가득한 책들을 읽으며 왠지 알맹이 빠진 빵껍데기처럼 느껴졌었는데,

이제 유홍준을 읽으니, 비로소

제주도의 '사람 냄새'가 물씬풍기는 책을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는 뭍 사람들 '석주명, 김정희'들과 섬 사람 '만덕, 이재수' 들의 이야기도 땀냄새 물씬 나고,

피비린내 진동하는 4.3에 대한 진혼곡도 빠지지 않고 바쳐지며,

말똥의 비릿한 섬유질 냄새까지도 그의 글은 잘 담아내고 있다.

이것은 국토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아니고서는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제주의 본향당 이야기는 인문학적으로 뛰어난 감성이 가득 배어나는 향취를 남긴다.

 

와흘 본향당은 이뤠당이어서 7일, 17일, 27일 새벽에 만날 수 있어요.

이렛날 새벽에 빌러 왔는데 앞사람이 먼저 할망하고 독대하고 있으면

밖에서 그 독대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 사람이 나온 다음에야 들어갑니다.

독재하고 나온 이에게는 절대로 말을 걸어선 안 됩니다. 이건 철칙입니다.(38)

 

가난한 섬에서 살면서 얼마나 힘든 일이 많았을까.

죽음이 질펀한 섬, 태어남과 죽음이 마구 섯갈리는 섬,

파도와 너른 바다, 태풍이 늘상 삶의 질곡을 피말리는 섬에 사는 사람들은,

인문학적 감수성을 발휘하여 전설과 현실이 맞물리는 지점에 '상담 선생님'을 모셔 두었단다.

그 상담 선생님은 절대로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단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부터 시작하여 제주도 4.3에 대하여 이렇게 밀린 마음의 빚을 갚듯,

슬픔의 빚을 가득 풀어내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읽는 나도 괜히 마음이 푸근하여졌다.

아직도 4.3은 '대한민국'의 정당성에 생채기를 낼 수 있는 사건이라, 은밀하게 유통되는 역사다.

 

4.3 이아기를 풀어내서 제주 할망의 한을 다독거려준 다음에라야 그의 이야기는 자연으로 넘어간다.

다행이다.

고마웠다.

 

대상은 묵직하고 필치는 느릿하고 색채는 야성적인 갈색과 검은색이 주조를 이루었다.

초록의 들판 그림에서도 검은색은 빠지지 않았고,

흰 파도의 포말도 검은 돌 위로 넘어왔다.

강요배의 검은색은 제주 땅의 기본을 이루는 화산암이었다.

 

'흰 바다'에서는 남쪽 먼바다로부터 마파람이 불어오면서 크게 뒤채는 파도가 넘실댄다.

'팽나무'에서는 맵찬 칼바람에 살점이 깎여 검은 뼈 가지로 버티는 제주 팽나무의 생명력이 살아있다.

 

바람이 구름을 휩쓸어 '황무지'를 후려친다.

새벽 공기 속 '호박꽃'이 싱싱한 여름,

한낮엔 속으로 붉게 타는 황금빛 '보리밭' 들판 가득 흐드러지고,

땡볕에 무르익은 노랑참외'의 단내가 들길에 썩어 넘실거릴 때

'먼바다'는 쪽빛이다.

능선 고운 '오름' 잔디가 금빛으로 옷갈이하고 맑은 바람 속에 작은 '산꽃'들이 하늘댄다.(작가의 변, 강요배 팸플릿 중)

 

소사나무도 참 멋진데, 다랑쉬오름의 소사나무도 예술이다.

 

소사나무는 녹음이 멋진 나무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소사나무들은 바람이 가장 많이 들고 나는 바닷가 산언덕 즈음에 무리지어 숲을 이루어 특별한 풍광을 자아낸다.

굵어도 아주 크지 않고,

적절히 자연의 선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의 이리저리 부드럽게 굷은 줄기하며,

운치있게 흰빛도는 수피가 점차 짙어가는 초록의 잎새와 아주 멋지게 어울린다.(93)

 

이런 것은 국립 수목원 연구관 이유미의 글인데,

이런 글을 모아두는 것만해도 재산이다.

 

기암 괴석들이 쪼아 새기고 갈고 깎은 듯이 삐죽빼죽 솟아있기도 하고 떨어져 있기도 하고, 어기어 서있기도 하고,

기울게 서있기도 하고, 짝지어 서있기도 한데,

마치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하고,

대화하느 것 같기도 하고,

서로 돌아보며 줄지어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조물주가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것이다.

좋은 나무와 기이한 나무들이 푸르게 물들이고 치장하여 삼림이 빽빽한데

서로 손을 잡아 서있기도 하고,

등을 돌려 서있기도 하고,

옆으로 누워있기도 하고,

비스듬히 서있기도 하니,

마치 누가 어른인지 다투는 것도 같고, 누가 잘나쓴지 경쟁하는 것도 같고,

어지럽게 일어나 춤추고 절하며 줄지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토신이 힘을 다하여 심어 놓은 것이다.

신선과 아라한이 그 사이를 여기저기 걸어다닌다. 이쯤되면 경개를 갖추었다고 할 만 하다.(173)

 

이는 영실을 묘사한 이형상 목사의 등반기다.

제주는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길이면 길...

모두가 그림같이 아름답다.

마음 속에 그 그림을 떠안고 오는 수밖에...

 

그의 이야기는 자연에 인간의 냄새가 가득 묻어 나면서,

진한 삶의 체취와 자연이 둘이 아닌 경지를 마치 옛이야기 하듯 들려준다.

 

전설이 유물을 만나면 현실적 실체감을 얻게 되고,

유물은 전설을 만나면서 스토리 텔링을 갖추게 된다.(224)

 

그가 전공한 '유물'에 대한 공부가 '역사', '전설' 속의 인물들과 혼연일체가 되고,

그것이 되살아나기 위해 유홍준이란 스토리텔러가 우리 곁에 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관이 민에게 강제하면

생명없는 관제 작품이 되지만,

민이 요구하는 것을 관이 받아들이면 명작이 나온다.(248)

 

제주의 관덕정 돌하르방은 참 씩씩하게 생겼다.

예술품은 완성도보다 중요한 것이 생활 속의 쓰임이다.

인간과 어우러지지 않고 거기 그저 놓인,

"뽈대"들에 대한 한없는 한탄이 생각없는 행정의 소산임을 토로하지만,

민중이 만들어 놓는 작품들이 제주의 토양에 스며든 것들은 참 늠름하다.

 

한국어의 여러 방언들은 어느 지역 말이 표준어가 되든,

소수의 '명사'들과 몇 가지 '어미'들이 독특하여 '방언'으로서 구분이 가능하지만,

제주어는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이질적이다.

 

2007년 제주도는 '제주어 보전 및 육성' 조례안을 만들어

주주 방언이 아닌 '제주어'라고 공식화했다.

유네스코도 2010년 12월 제주어를 '다섯 가지 소멸 위기'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한 위기'라고 판한했단다.(283)

 

마치 현무암처럼 푸석거리는 화산암과도 같은 질감을 가진 언어,

아래 아가 살아있어,

언어의 감촉이 졸깃거리는 곶감을 입안에 굴리는 듯,

간결하고 재미나게 만들어진 받침 'ㅇ'이 궁글리는 말맛을 가진 언어.

 

그런 언어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인류 문화의 손실이다.

 

백난아의 '찔레꽃' 가사 중에 '찔레꽃 붉게 피는'의 유래도 재미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꽃은 흰색인데 왜 붉게 핀다고 하느냐니,

식물학자 박상진 교수 왈,

줄기에 잔가시가 많아 잘 찌릴는 해당화의 별칭이 찔레꽃이란다.(295)

 

문화재청장까지 역임한 그가 많이 둥글린다고는 했지만,

역시 그는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이 살아있어야 유홍준이다.

 

하멜상선 기념 전시관으로 지은 배는 원래 배의 80% 크기란다.

그 이유를 물은 즉슨,

역시 한국이다.

돈에 맞춰서 지은 거라하니, 참 그 느낌 익숙하다.

 

제주의 사람과 경관과 역사와 문화 유산을 훑으며 내려오다

최남단 마라도 가기 전 모슬포에 닿아 그 소회를 노래한 정진규의 시는 제주의 한을 오롯이 휩싸안는다.

모랫바람으로 가슬가슬하지만 마음만은 포근하다.

 

   지난 봄 제주 가서 보고 온 노오란 유채꽃들은 모로 누워 일어날 줄

몰랐다 노오랗게 기절해 있었다 모슬포의 유채꽃들은 그랬다 모슬포

의 바람 탓이었다 모슬포의 바람은 어찌나 빠른지 정갱이도 무릎도

발바닥도 없이 달려만 가고 있었다 아랫도기가 없어진 지가 사뭇 오

래된 눈치였다 염치가 없었다 다만, 이따금씩이 아니라 연이어 귓쌈

만 세차게 후려쳤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알 수가 없었다 송악산

민동산엔 네 발굽 땅 속 깊게 묻은 채 떨고 섰는 오직 비루먹은 조랑말

한 마리, 그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연이어 귓쌈만 세차게 얻어맞고 있

었다 추사 선생의 대정 마을로 내려와보니 입 굳게 다문 채 제주사람

들은 그 바람의 모진 내력들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모슬포 바람, 전문, 396)

 

이런 것이 인문학의 힘이다.

사람의 삶이 얼마나 지난했던지,

그것을 말로 다 할 수 없을 때,

지나가는 맵찬 바람에 묻어서,

시퍼렇게 파도치는 바다의 매질에 얹혀서,

사람의 삶이 이렇게 부대낌을 노래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한국 인문학에 유홍준은 큰 재산이다.

 

그의 일본 유산도 재미있게 읽고 있다.

그가 문화재청장을 하고 나니, '행정'에 대해서도 문리가 트인 듯 하여 더 반갑다.

이제 투덜이 스머프에서,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똘똘이 스머프로 변신할 여유가 있어 보여 반갑고 기쁘다.

그의 건필을 온 마음으로 빌고 있다.

 

--------------  눈에 띈 이상한 것 두 가지

 

302쪽. 2003년, 하멜 표착 350주년 특별전을 준비할 당시... 태풍 루사의 세력이 커지는 바람에...

         문맥을 잘 읽으면 준비할 당시니까 그 이전일 수 있지만, 태풍 루사는 2002년 여름에 불어온 바람이다.

 

453쪽. 시바 료오따로오(司馬遼)는 일본 이름으로 司馬遼太郞 으로 써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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