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부의 서재 - 어느 외주 교정자의 독서일기
임호부 지음 / 산과글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후와~ 님은 알라딘 서재에서 몇 년째 만난 분이다.

이번에 '임호부'란 재밌는 필명으로 책을 냈다.

나랑 동갑이어서 같은 시대를 살아온 이야기엔 공감도 가면서도,

독문과(왠지 독문~은 딱딱하고 독해보인다.) 출신이어선지,

문학적 감성이 말랑말랑 멜랑꼴리하다가도 어려운 말들이 막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을 때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던 두 고정관념은,

'외주교정자'와 '헛헛함'이었다.

 

어쩌면, 그것들이 이 책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들인지도 모른다.

외주교정자로서의 일은 '독서가로서의 작가'와는 같아보이지만 전혀 다른 일을 하게 할 수도 있다.

외주교정자는 '정독'보다는 '문자독'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헛헛함'은 그의 '후와' 하는 한숨 소리와 상관있는 심사같기도 하고,

스토리 텔링에 몰두하기보다는, 스토리 사이사이, 인물들 사이사이의 기류를 감지하는 촉이 발달한

작가의 숨소리가 내 마음에 닿아서 느끼게 하는 심리적 상관물 같기도 하다.

 

암튼, 내가 전혀 모르거나 관심이 없었던 책들도 많아서... 지루한 독서였던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이러이러한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쓰여진 책이라기보다는,

이러이러한 글들을 모아서 꾸린 책이어서 작가의 목소리도 뜬금없이 어눌하면서도 수다하고,

읽는 이 역시 좀 당황스런 맘을 감출 수 없다.

 

이 책에서 몇 번이나 등장하는 '나이브'하다는 말은,

작가가 '프로'의식이 없어보여,

쓸데없는 겸손 내지는 자신감 없음으로 비춰져 눈에 거슬렸다.

전문적인 분야라면 좀더 자료를 찾아야 할 것이고,

정서적으로 에두르는 분야라도 '나이브'하다는 것은,

뭔가 '치열하지 못함'의 변명인 듯 하여 눈에 자꾸 밟힌 것 같다.

 

그이의 가장 큰 '주특기'는 개념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다.

거기서 일반적인 통념과 다른 사념을 솔솔 풀어내는데, 그런 장기를 잘 살려 쓴 글들은 정말 맛깔나다.

입장을 몇 가지로 해석하는 그런 것.

 

'도망치기'라는 제목은

마치 입장을 끊임없이 유예하려는 내 지질한 모습을 연상시킨다.(184)

 

이런 것이 작가의 '입장'이래서야...

 

눈이 올 때 생각나는 사람은 기쁨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고,

비가 올 때 생각나는 사람은 슬픔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다.

눈을 함께 맞는 사람과는 연애를 할 수도 있고,

또 그렇게 헤어질 수도 있지만,

비를 함께 맞는 사람과는 설사 연애는 할 수 없더라도 쉽게 헤어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기쁨은 때가 되면 우리를 떠나지만 슬픔은 어지간해선 우리를 놔주지 않으니까.

기쁨은 발산이고 슬픔은 수렴이다.

기쁨은 증발되지만 슬픔은 스며든다.

기쁨은 !!!이고 슬픔은.......이다.(208)

 

김소연이랑 '마음 사전'을 쓰라고 둘이 놀라고 하면,

아마 죽을 때까지도 놀 수 있을 사람이다.

 

 

 

인생을 허비한다는 표현은 함부로 쓸 게 못 된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끼거나 혹은 낭비할 수가 있겠는가.

인생을 부여받을 때 얼마의 시간을 어떻게 쓰겠노라고 미리 계약서를 작성한 것도 아닌데.

가장 끔찍한 오만은 내 인생의 선로나 항로가 이미 정비되어 있음은 물론

내가 그 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150)

 

그이 글 속에선 '겸손'과 '주저'가 뒤섞여 나온다.

그것이 그의 글의 묘미로도 작용하고, 심심하다고 느껴지는 한계로도 비쳐진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나랑 비슷한 구석도 많은 사람 같다.

그랑 술을 마시면, 술병만 줄줄 늘어서고, 회만 급속도로 줄어들고,

묵묵한 시간이 술잔 사이로 가득할 것이다.

아마, 그러고도 지루하지 않게 취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호,흡'이 '흡, 흡'하고 숨이 컥, 막히는 '흡기 吸氣'가 아니라,

'후와~'하고 내쉬는 '호기 呼氣'라서 다행이다.

 

이렇게 우연히 써두었던 글들을 모아서 낸 책이라,

참 좋은 그의 글들이 아쉬운 측면이 많다.

 

이제 외주교정자란 직업을 좀 벗어두려는 계획이라면,

조용히 앉아서 글을 쓸 시간과 공간을 누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작정하고 글을 쓰면 더 진도가 안 나갈는지도 모르지만,

남의 글에서 눈을 떼고, 자신의 마음을 살며시 열어 일관된 글들이 주르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한다.

 

그래서 그때는,

임호부란 필명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이름 석 자를 드러내 주기 바란다. ^^

 

(후와 님, 이 얄궂은 글에 제 응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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