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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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를 살아간 청소년들에 대한 성장담...

 

정이현이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시대는

1990년대 중반이다.

그때 중딩이자 고딩이던 아이들의 삶은 어땠을까.

그들은 힘겹게 온갖 사태 속에서 서태지의 노래를 들으며 살아왔고,

지금도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세미, 준모, 지혜는 조금씩 독특한,

그리고 대부분 평범한 아이들이다.

 

나,는,사,다,더,쓰,먼,도,켔,구,나,아,무,도,모,드,게

 

부자로 살면서 떵떵거리던 할머니가 마지막에 남긴 말...

나는 사라졌으면 좋겠구나... 아무도 모르게...

 

그런데 이 말은, 단지 할머니의 삶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말 가운데 욕설이 튀어나오는 틱을 가진 준모도,

부모에게서 버림받아 할머니 집에서 눈칫밥을 먹는 세미도,

학원에서 뺑뺑이를 쳐야 하는 지혜도...

그 가슴 속에는 모두 저 말을 곱씹으며... 그렇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이 책의 마지막은 그래서 더 애처롭다.

 

우리는 곧 어디엔가 도착할 것이다.

계속, 살아가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남긴 마지막 작품의 제목이

폴 발레리의 시를 인용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인 거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리라 추측한다.

 

삶은 어느 대목에서나 목에 걸린 가시처럼,

사람의 마음을 짓누르는 요소가 놓여있게 마련이다.

 

그 삶을, 아름답고 장엄한 화엄의 꽃밭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사람이고,

역시 그 삶을 피폐해 돌아보기도 싫은 시궁창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으면 좋겠을 때의 맥락에 놓였을 때,

마음의 밭은 불가마에서 타오르는 화염처럼 주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럴 때,

나만 그렇지 않다는 거 이야기할 수 있는 '대숲'이 있다면,

거기 가서 도란도란 '임금님 귀가 말야, 당나귀 귀야 ㅋㅋ'

이러고 나면, 좀 풀리지 않겠는가.

 

이 책이 한 사람의 시점으로 쓰이지 않고,

세 친구의 시점이 복합적으로 쓰인 것 역시 그런 함의를 갖고 있는 것이리라.

 

바람이 부는 것만으로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조금은 불러일으킬 수 있음에랴.

자기 이야기를 관심기울여 들여주는 친구가 있을 때,

뒤틀리는 뱃속의 내용물을 시원하게 배설할 수 있는 해우소가 있을 때,

그 친구 덕분에 삶은 한 순간에 '찬란한 꽃밭'으로 뒤집힐 수 있다.

 

원효가 해골물을 마시고,

의상, 너나 중국 가서 뭘 배우든 말든 해. ㅋ~

난 어떤 경계에 더 갇히지 않고 기냥 여기서 민중 불교를 노래하며 살 겨~

이렇게 변한 것 역시,

중국의 불교라서 훌륭한 것도 아니고,

어떤 경계에 해당하는 것이 존귀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맞는 해우소로서의, 대숲으로서의 종교라면,

그것이 종교의 존재 이유임을 찾아낸 '유레카'의 해골물이었을지 모른다.

 

 

 

고쳐야 할 맞춤법 두어 개...

 

창비는 독특하게 외래어 표기법에서 쌍자음을 사용한다.

씨스템 같이... 이제 그런 것은 보아 넘기겠는데,

 

이 책에선 '대가', '개수'처럼 사이시옷을 받쳐적지 않아야 할 곳에,

'댓가', '갯수'처럼 틀린 표기를 한 곳이 몇 군데 보인다.

청소년 소설, 성장 소설인데, 창비처럼 교과서도 내는 출판사가 한글맞춤법을 틀리는 일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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