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아프니까 청춘이다?

청춘은 아파야 할까?

그 아픈 내용에 따라, 위로도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

40대를 국가에서 내팽개친 결과,

40대 자영업자의 자살률이 극에 달한다는 국가.

결국, 자영업자란 실업자의 생존 양식의 하나이기에,

20대 젊은이의 아픔에

'너희만할 땐 다 아픈거란다.'라고 말하는 어른은,

무식하거나,

무책임한 것이다.

 

물론,

삶은 가볍고 부질없는 것이기도 하고,

잔디밭의 이쪽에서 보면, 저쪽 잔디밭이 늘 푸르르게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허나,

삶의 앞길이 가시밭길처럼 보여

초등학생부터 조마조마한 심사로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박웅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번 들어볼 만 하다.

 

무엇보다, 그의 이야기엔

'성공한 자로서의 허세'가 없다.

내가 싫어하는 류의 '이지성'처럼 '리딩으로 리드하라' 같은 잘난 체.

김난도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얄팍한 처세술 내지 위로하는 체하는 방식이 아닌,

그렇다고, 김어준처럼 '야, 니 현실을 직시해' 류의 돌직구도 아닌,

살아가는 힘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고자 하는 진지함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러기에, 그의 책에서는 이지성 처럼 비전을 제시하지도, 김난도처럼 달콤한 위로를 던지지도, 김어준처럼 속시원한 상담을 해주지도 않는다.

세상은 그냥 갑갑한 그대로다.

그렇지만,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갑갑해 왔고,

책 속에서 그 세상을 살아가는 군상들의 얼굴을 확인하면서,

자신의 위치가 그닥 좌절스럽기만 한 곳도, 그렇다고 아주 우월한 곳도 아닌, 살기 위해 부지런히 살고 있는 자의 자리,

요즘 인기있는 만화인 윤태호의 '미생'의 자리가 아닐까 싶은 이야길 들려준다.

 

그의 삶의 모토. 개처럼 삽니다.

 

개는 밥을 먹으면서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자면서 내일의 꼬리치기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132)

 

이 책에서 이 말이 참 맘에 들었다.

너무 힘겹게 살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과거에 대한 죄책감, 후회,

미래에 대한 두려웁, 걱정... 다 부질없는 것들이다.

미래 사회는 갈수록 불확정성의 시대가 될 것이다.

스마트폰을 모두들 가지고 다닐 시대를 예측하지 못했듯이,

미래 사회의 삶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걸 위해 아둥바둥 천방지방 지방천방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상처투성이 삶을 살 이유는 없다.

 

힘 닿는 한, 최선을 다해보는 자세는 좋지만,

뭐, 안 되더라도 너무 아파하지 말 일이다.

 

박웅현이 <그들의 삶의 긍정과 내 삶의 긍정>으로서,

비교하지 않음으로서 <비로소 나의 현재에 대한 존중>이 50이 되어서야 생겼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아이를 둘은 낳아야 한다고 그러는 사람들,

아이를 낳아도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

초등학교부터 조기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사람들... 그들과 비교하면, 늘 배고프다.

 

<나의 현재에 대한 존중>과 그들에 대한 긍정... 개 같은 삶이다. ^^ 긍정적인 아름다운 개~!

 

인문학을 하면 밥이 나오나요?

 

고미숙이나 이지성은 나온다고 할 것이다. ㅋ~

지들은 그걸로 밥벌이 할는지 몰라도, 인문학은 배고픈 학문이다.

도깨비 방망이처럼 밥이 튀어나오질 않는다.

그걸, 박웅현은 역시 긍정하면서, 인정한다.

 

인문학을 하면 밥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안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문학을 하면 밥이 맛있어집니다.(144)

 

그래. 밥을 배부르기 위해 먹을 수도 있고,

이유없이 먹을 수도 있고, 맛을 음미하며 먹을수도 있다.

삶을 음미하며 살려면, 인문학을 하고 고전을 읽을 필요가 그래서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가 참 고맙다.

 

그의 회의 이야기는 한국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싶다.

 

회의가 끝날 때쯤에는 제일 고참인 제가

오늘은 별 거 없으니 그냥 쉬자거나

오늘은 꼭 이 주제를 발전시켜 보도록 하자라고 방점을 찍어 줍니다.

그래야 편히 쉬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서도 아이디어를 떠올리든 할 거 아닙니까

소통만 잘 돼도 언제 어느 때 떠오를지 모르는 아이디어의 분산을 막고,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아무 말 없이 휙 나가버린다면,

남은 사람들은 뭘 해야할지 모르고 갈팡질팡할 겁니다.

더 생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시간이 다 가겠죠.

괜히 야근이나 철야를 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말이죠.

그러니 방향을 정해주지 않은 채,

소통하지 않고 혼자 독단적으로 회의를 이끄는 건 죄악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입니다.(181)

 

작년까지 4년간 부장을 맡아서 회의에 들어가면 난 늘 회의적이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회의시간... 참 싫었다.

올해 학교를 옮겨 부장을 면직하니 참 홀가분하다.

내년에 부장을 안 할 방도를 모색하고 있는데, 이런 글만 읽고도 갑갑하다.

 

혹자는 네가 승진해서 그런 풍토를 고치라고도 하지만,

승진을 위한 코스가 참 희한한 곳이 한국이다 보니, 한숨만 폴폴 나온다.

 

인생을 정해진 코스대로만 도는 경마와 같은 것이라 여기면,

이런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하여 경쟁을 위한 도구를 벼리는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언제 마쳐질지 모르는 코스가 없는 행로다.

달리는 사람도 있고, 걷는 사람도 있고, 기어가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자신을 긍정하고,

자신을 존중하는 진정한 '자존'을 얻는다면,

여덟 단어 아니라, 한 단어에서도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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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광고쟁이라 좋은 이야기를 잘 끌어들여 쓰는 경향이 있다.

다만, 모호하게 틀린 것들도 제법 된다.

내 생각과 다른 것들을 몇 가지 적어 본다.(혹시 작가나 편집자님이 보시면 연락 주세요. 지울게요.)

 

33. 이순신은 물살을 보고 그것을 이용해 한산대첩에서 승리합니다... 한산도는 통영 앞바다의 다도해의 한 섬이다. 지금은 한산 대첩을 기념하여 제승당을 지어 충무공을 기린다. 그런데, 이곳은 지형을 이용하여 '학날개 전법'을 쓴 '학익진'의 역사적 현장이다. 물살이 흐르는 속도가 무지 빨라 우는 것 같다 하여, 울둘목(한자로 울 명 鳴 을 써서 명량)이라 부르는 진도 앞바다의 해전을 착각한 것 같다.

 

51. 트위터 아냐? 40자로 메시지를 써서 올리고 공유하는... 문자 메시지는 40자지만(나쁜 회사들, 70자까지 쓸 수 있다며?) 트위터는 140자다.

 

85. 첨성대는 대양을 관측하는... 태양이겠다.

 

140. 만혹 滿或의 나이가 됐어요. 불혹에 대한 패러디인데... 불혹이 미혹되지 아니한다...는 惑을 쓰니, 마찬가지 한자를 써야한다.

 

228.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니라. 이것만 옳고,

              不患人之不己知, 患己不能也는 이상하게 여겼는데, 전자는 논어의 '학이'편에 나오고, 후자는 '헌문'편에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작가를 의심하다 하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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