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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 세트 - 전5권 ㅣ 이오덕 일기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평점 :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은,
하루가 빤한 틈 없이 교문에서 본관에 이르는 긴 길에 최루탄이 터졌고,
급기야 대학 3학년때는 서울 시내를 구석구석 누비며 독재타도를 외게 만들었고,
또 시절은 내가 졸업하고 교사가 되고 나서는 전교조가 생겨 탄압의 그늘을 드리우곤 했다.
그 시절,
교육운동의 한켠에서 늘 꿋꿋한 힘을 보태셨던 분이 이오덕 선생님이시다.
내가 방위근무를 하는 동안 퇴근해서 밤 늦게까지 교육 공부를 하도록 만든 책들이
참교육으로 가는 길, 이오덕 교육 일기1,2, 어린이 문학 등등의 책들이었다.
이번에 선생님의 일기를 양철북에서 5권으로 묶어 내었다.
내가 예전에 읽었던 교육 일기 1,2는 워낙 오래전 책이라 그런지 검색이 되지 않는다.
이번엔 그이의 마지막 일기장을 들쳐보고 싶어서 5권을 읽었다.
짠하다.
우리말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시고,
아이들의 생활글을 널리 알리게 하는 아동문학 교육에도 큰 역할을 하신 선생님의 마지막 날들은 애잔하다.
사람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했다.
무엇보다, 건강해야한다.
아프고 나면, 그 아픈 것의 노예가 되어 꼼짝 못하는 '자유를 잃은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분의 일기 속에 등장하는 '소로우, 권정생, 전우익, 리영희' 같은 분들은
한 시대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미 쨍쨍하던 정신의 시대가 저물어 버렸는가.
오전에 '소로우의 노래'를 읽다가 그만두고 의자에 기대어 눕듯이 해서
남쪽 창 너머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구름이 온갖 모양으로 바뀌고 흘러가고 하는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무리 쳐다보아도 또 보고 싶었다.
아, 내 남은 목숨은 저 하늘의 구름과 함께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58)
선생은 우리말 우리글 바로 쓰기 일꾼으로서도 훌륭한 분이셨다.
이 책에선 '너무, 너무나' 같은 말들이 자주 보인다.
선생도 감탄의 자리에선 너무~ 같은 말들이 튀어나오신 모양이다.
그렇지만, ~것, ~적 같은 표현들을 쓰지 않고도 아름다운 우리글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이 드신 분의 표현이 참 조촐하게 정겹고 친근하면서도 우아하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진보적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한자능력시험 같은 것들이 강조되던 면을 강하게 비판한다.
김종필이가 좀 설쳤던 모양이다.
투표장에서 얻어먹고 찍어주는 무지렁이 민중들을 보고 부아도 치민다.
이놈의 백성들이 피눈물 흘리면서 굶주리는 꼴이 되어야 마땅하구나 싶었다.
도무지 이 백성들은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다.
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선거고 뭐고 해서 무얼 하나.
천날 만날을 가도 이 꼴일텐데.
이 꼴에서 한 걸음도 더 앞으로는 나가지 못할 것인데 뭘 하겠나.
이 망할 놈의 나라.(123)
그런 것을 잘 알기에, 정권을 잡은 놈들은 교육을 건드린다.
아무 것도 아닌 데 반기를 들면 교사를 쳐낸다.
굴종의 교육이 이 나라 민주주의를 말라죽게 하는 일번지임에랴.
프랑스 어떤 정치가가 '교육의 목적은 저항할 줄 알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는 데,
노무현 이후로 10명은 더 괜찮은 대통령이 나왔어야 조금이라도 될락말락 한 일인데,
다시 교육은 스스로 굴종하는 교육으로 '망할 놈의 경쟁'에만 목을 매는 교육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마지막권은 그이의 말년의 건강 문제가 아주 상세하게 적혀있다.
'아픔을 느끼고 아파주는 것'
이것은 저항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플 때,
밤중에 깨어났다가 다시 자려고 누워 있으몀 몸이 지긋지긋한 것을 한순간 느낀다.
그때가 중요하다.
그 아픔을 발견하고 그 아픔을 함께 느껴야 한다.
내 마음이 내 몸을 끌어안고 함께 아파주는 것이다.(165)
나이들면, 아플 수도 있다.
오히려 아파야 정상이다. 그 아픔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
이런 것이 인문학적 통찰이 뛰어난 사람의 마음이다.
선생의 일기를 보면서,
그런 통찰을 배워야 한다.
참 오늘이 내 생일이다.
내 생일이라고 정우한테 말하지도 않았다.
정우도 저녁에 와서 아무 말이 없이, 오늘 회관 벽에 돌붙인 일과 단감 이야기만 하다가 가서 마음이 놓였다.
이렇게 모두 나를 잊어버리는 것이 참 마음이 편하고 좋다.(221)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늙어가는 것을 마음 편하게 여기는 여유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마음은 없으면서 지나치게 자주 모여서 시끌벅적 먹는 일에 애쓰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선생은 정말 애써 일하면서,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그 일이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이어서 지나치게 머리를 써가며 일한 것일 뿐.
미국에 살면 고층 빌딩 폭파 테러를 맞아 봉변당할 수 있듯이,
미국 아닌 나라의 도시에 갇혀 살아도
이런 용변 못 보게 되는 테러를 스스로 불러오게 할 수도 있다는 이치를 알아야 할 것이다.(273)
미국의 교포 자녀들이 선생을 방문했을 때,
어떤 아이가 화장실이 더러워 못 가서 그만 옷에 실수를 했단다.
그런 것도 다 도시 생활의 폐해인 셈.
선생의 열린 마음은 광복절을 '해방 기념일'이라고 부른다.
'광복'은 '빛을 되찾음'의 의미로,
어디로 되돌아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용어다.
이씨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승만 옹의 희망일는지도 ㅋ~
해방 기념일이 옳다.
하긴, 그 이씨 조선의 한 후예는 '건국절'을 무지 좋아하기도 했다.
이렇게 낱말 하나를 쓰는 일도,
자신의 자존을 지키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
인문학적 토양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선생의 글을 보면서 배운다.
무작정 한자말을 쓰지 말자고 하는 것도 웃기고,
남들이 다 쓰는 말을 혼자서만 '순화'한답시고 사회성 떨어지게 쓰는 사람도 민폐다.
선생이 '일본어'의 폐해가 얼마나 많은지를 이야기하신 거 보고,
나도 일본어 공부를 십여 년이나 했을 정도로
나도 선생의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이다.
늘 인문학적 정신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자기의 존엄을 자기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런 것들을 선생의 일기를 읽으며 되돌아보게 된다.
실수 한 군데.................
60. 값은 일본 돈 3천엔인데, 10.3배로 해서 3만9천원을 주어야 했다.
13배가 되든지, 3만 9백원이 되어야 계산이 맞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