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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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참 손에 닿지 않았다.

그런 게 인연이다.

 

그런데 한번 닿고 나니, 정신을 쏙 빼놓게 달려갔다.

그런 게 또 인연이다.

 

이 소설의 제목, 주인공은 '은교'인 것 같지만,

기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은교는 관찰과 욕망의 투영 대상일 뿐이다.

이 소설엔 세 명의 남자 시선이 등장한다.

 

주인공 이적요 시인.

명망있는 시인이자 고고한 학처럼 알려진 노인에게 다가온 은교는

열일곱 소년에게 어느 날 밤 당황스럽게 밀어닥친 몽정처럼,

짜릿하고 황홀하고 어쩔 줄 모르는 감정을 던져준다.

이적요의 욕망은 '소리없는 아우성'이요, 들불처럼 번지는 적요다. 깊은 공감을 준다.

유리창을 뽀드득 닦는 은교의 투명한 마음을 사랑한 노시인...

서늘했던 그의 인생에 환한 분홍빛 햇살이 비쳐들 때, 노시인은 불가항력이었다.

 

반동인물 서지우.

한 마디로 멍청하다.

그렇지만 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열병을 앓다가 급기야 가짜 작품으로 유명인이 되지만,

이적요의 질투에 걸려들어 죽음을 맞는다.

그의 욕망은 지독하게 속물적이다.

그의 전공이 '무기(無機, inorganic) 재료공학'이듯, 그의 삶 역시 풍부한 유기체적 역동성을 잃은,

무기질적인 파편으로 산화된다.

 

객관적 관찰자, 큐 변호사.

한국인의 이니셜을 Q라고 붙일만한 이름이 있을까?

퀘스쳔~을 풀어나가는, 탐정에게 어울림직한 이름이다.

 

이 소설은 씨실과 날실이 철컥철컥 교차하는 베틀과도 같다.

그런 면에서는 한 편의 추리소설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얄팍한 질투심과 분노, 이런 것들을 보여주기에

이렇게 맞춤한 소재도 드물 것이다.

 

은교는 그들 모두에게서 '저만치' 떨어진 곳에 서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은교가 가슴을 치면서 '이까짓 게 뭐라고...' 하는 말은 뺐으면 좋을 뻔 했다.

오롯이 남자들의 욕망의 시선으로 처리했으면,

삶의 페이소스가 좀더 적실하지 않았으려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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