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탄트 메시지 - 그 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로 모간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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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난 이 이야기가 픽션같다. 그리고, 정말 픽션이면 좋겠다. 그런데 아무래도 넌 픽션 같다. 정말 작가가 지어낸 멋진 명상 소설이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미국인들이 학살한 어메리컨 인디언들의 메시지와 호주 참사람 부족의 메시지는 참 많은 공통점을 준다. 그들은 잘난 체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도 잘난 것 없음을, 그리고 무탄트(돌연변이) 우리들이 얼마나 평화로운 땅에서 멀리 떨어져있는지를 알려 준다.

미국에서 멀쩡하게 의사를 하다가, 불현듯 호주에서 들어온 제의에 따라 호주로 날아간 지은이는 희한한 납치를 경험한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참사람 부족과 서너 달 간의 여행에 합류하고... 비통한 참사람 부족의 후손 단절 선언을 듣게 된다. 현실로 돌아와 행복해 하면서도 그는 다시 그 여행을 그리워한다.

그는 시험을 통과하는 유일한 길은 시험을 치르는 일이란 단순하면서도 인정하기 어려운 진리를 깨닫고 있다. 그래서 시련을 시련으로 여기지 않고, 신비한 체험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 소유의 물건을 빼앗기고, 불살라지는 과정을 통해 분노할 뻔 했지만, 그는 <물건이나 자신이 가진 어떤 관념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야 말로 참다운 인간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 걸음>임을 배운다. 소중한 것은 물건이 아니라 '경험'임을...

여행 중에 견디기 힘든 파리떼의 공격에, 미용실에서 하듯이 온 몸을 내 맡기고 파리들의 애무를 즐긴다. 근는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것의 진정한 존재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무조건 나쁘다거나 힘들다고 평가한 것을 반성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해결책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말보다 텔레파시로 의사 소통이 가능하고, 외과 수술에서 주술적 요소가 담긴 특효약 치료를 경험하는 의사. 62인의 호주 원주민과 함께한 특별한 여행은 마치 티몬과 품바와 함께하는 라이언킹의 <심바>의 경험처럼 극적이고, 복잡한 구성을 이루는 픽션에 가깝다. 낯모르는 카페에서 그날 있지도 않던 점술가가 예언을 남긴 것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도 그렇고, 그 상황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고... 신비로움과 우연의 일치 치고는 작위적인 듯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는 거울이 없음이 의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석 달간 변변한 세수 한 번 하지 못한 멋쟁이. 정비석의 산정무한에 <거울이 태어나면서 세상의 비극은 시작되었다>는 구절이 있는데, 정말 우리는 자기의 시선, 남의 시선에 얼마나 <나의 본질>을 빼앗기게 되는지... 내 마음의 흔들림 없는 평화로움을 거울에게 얼마나 많이 빼앗기고 마는지... 비단 백설공주의 못된 왕비뿐 아니라, 우리도 얼마나 거울을 보면서 "거울아, 거울아..."하며 살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새삼 차도르 속에 감춰진 자유로움을 떠올릴 수도 있지 않은가.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란 레스토랑이 인기다. 넓은 매장과 다양한 할인, 그리고 맛으로 많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 영업 전략은 유사한 티지아이나 베니건스에 비해 탁월한 면이 있다. 그래서 아웃백은 유난히도 많이 늘어난다. 그런데, 그 아웃백(호주의 '오지'라는 말)에 우리가 알지 못하던 <백호주의>의 피해자들이 지구의 멸망을 예언하며 비통해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는 전혀 모르고 살지 않았던가. 그 아웃백에서 원주민들이 즐기던 스테이크를 질겅거리며 우리는 우리가 최고의 문화인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지 않았나...

작가는 여행을 마치고 원주민들에게 <두 가슴>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속된 사람과 참 사람의 두 가슴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도 이런 책을 통해서 세례를 얻고 정화되어 두 가슴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올해 인문계 고교에서 실업계 고교로 전보 발령이 났을 때, 처음엔 좀 원망스러웠고, 다음엔 시간이 빨리 지나길 바랐다. 아직 실업계 근무도 해 보지 않고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일 주일을 아이들과 보내고 나니, 일반계 고교에 비해 훨씬 아이들이 싹싹하고 여유가 있다. 수업 시간에 똑똑한 척은 못하지만 참여도는 아주 높다. 내가 문학을 십육년 동안 가르치면서도 몰랐던 진리를 아이들이 헛소리를 통해서 들려준다. 예를 들면,

선생님 : 자, 그러면 (가)에 나온 신문 기사와 (나)의 시에 나온 언어의 차이는 뭐죠?
엽기학생 : 네, (나)의 언어는 그 때 그 때 달라~요.(컬투 버전, 이런 통찰력은 지식과는 다르다.)
선생님 : 아, 엄청 훌륭한 학생입니다. 그럼 시는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엽기학생 : 아, 시는 마음 속에 있는 거~죠.(정말 엽기적이지만, 난 이런 번득임을 본 적이 없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평화롭게 받아들이는 지혜,
그리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바꾸는 용기,
그것들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간절히 빌다 보면, 다시 그는 <당신이 신에게 말하느라고 바쁘면, 신의 목소리를 들을 겨를이 없다>고 해서 나를 명상으로 되돌리곤 한다.

'인간이 삶이라는 거미줄을 짜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 역시 한 오라기의 거미줄에 불과하다. 인간이 거미줄에게 가하는 모든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고 한 시애틀 추장의 말처럼 우리는 겸손해 져야 하고,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뒤에야, 마지막 강물이 더럽혀진 뒤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사람이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 크리족 인디언 예언자의 말처럼 인간은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고 나아질 비전은 없어 보인다.

그들의 안타까운 메시지를 조용히 듣고, 명상에 잠기자. 그리고 한 번에 한 사람을 돕자...

왜 무탄트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부른 노래가 단 한 사람 만이라도 행복하게 해 준다면, 그
것은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단 한 사람만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한 번에 한 사람밖에는 도울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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