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텐진 갸초(달라이 라마).빅터 챈 지음, 류시화 옮김 / 오래된미래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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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표지의 강렬한 인상에 끌려서 내가 읽지도 않고 벌써 몇 권을 선물했던 책이다. 책날개에 적힌 글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기에... 그리고 책날개도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복수는 더 큰 불행을 낳는다. 따라서 더 넓은 시각에서 생각해야 한다.
복수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므로, 용서를 선택해야 한다.
용서는 과거를 잊어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과거의 고통이 양쪽 모두이 편협한 마음 때문에 일어났음을
자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더 지혜로워지고 성장했음을 느낀다.

미움은 강인함이 아닌 나약함의 다른 모습이다.
미움을 통해 얻어진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미움이나 분노를 통해서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용서를 통해, 개인적인 차원에서든 국가적, 국제적인 차원에서든
우리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에 이르게 된다.
용서는 가장 큰 수행이다.

그렇지만 막상 나를 위해서는 사지 않고 있다가, 학교 도서관에 거의 새 책으로 오롯이 앉아있는 이 책을 만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얼른 빌려왔다. 주위에 얼씬거리는 학생들이 혹시나 집어들지도 몰라서...

토요일 반나절을 투자해서 촛불을 켜 놓고, 잠잠한 거실에서 혼자 뒹굴며 읽은 책의 소감은, 정말 감동적이다. 중국인 출신의 저자가 중국의 핍박으로 망명해 살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거처에서 관찰한 기록과 대화한 것들을 상당히 잘 서술하고 있다. 중간에 김용옥이 달라이 라마와 대화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도올의 <돌올한(높이 솟아 우뚝한)> 깡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직선적인 대화로 그려진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받는다는 달라이 라마의 '가해자 조차도 이해하고 용서하는' 수행의 계단은 머릿속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정말 이해한다고 하기는 어려울 정도다. 우리가 진정 일본을 용서할 수 있는가... 일본의 과거 행적은 미워하더라도, 일본인들을 미워하진 말자고 마음 먹긴 쉽다. 조영남이처럼 얼치기가 되어 <나는 친일파가 될래요.>하는 짓거리를 저지르는 것이 별 것 아닌 듯 하다가고, 간혹 <망언>이 불거지면, 가슴 한 구석에서 예전에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다 입이 찢어져 죽었다고 날조되었던 이승복 어린이 만큼이나 비장한 마음 속에서 <일본이 밉다>는 세뇌를 받았던 것이 나의 어린 시절 아니었던가.

달라이 라마에게 생명의 실체는 '인드라의 그물'과 같다. 고대 인도인들은 우주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닥의 실로 짜여진 거대한 그물로 생각했다. 그리고 각각의 그물눈에는 다이아몬드가 매달려 있다. 그 다이아몬드의 수많은 면들은 마치 무한한 숫자의 거울들처럼 나머지 모든 다이아몬드를 완벽하게 비춘다. 그리고 각각의 다이아몬드는 다른 모든 다이아몬드들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물의 어느 한쪽에서 일어난 파동은 아무리 미미한 것일지라도 나머지 그물 전체에 물결 효과를 일으킨다. 그것은 '나비 효과'와 같다.

이 책에서 저자 빅터 챈은 달라이 라마의 생각에서 불교의 핵심 두 가지를 짚어 내고 있다. 그 첫째가 '자비'이고, 둘째가 '상호 연관의 시각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인드라의 그물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것도 자신만의 원인과 조건에 의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불교의 <공> 사상이다. 이 <공>을 깨닫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내가 이해하기론, 자비는 가슴에 있고, 공은 머리에 있다.)

그래서 달라이 라마는 <공+자비=행복>이라는 등식을 도출한다. 불교의 두 가지 원리를 체득해서 깨닫는다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거다.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고, 그것이 마음 공부고, 수행이다.

그분은 "나의 수행은 내가 쓸모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고 말한다. 쓸모있는 나를 만들어 주는 수행. '사람과 행동을 구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나쁜 행동에는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을 한 사람을 적으로 몰면 안 된다.'고 하는 수행은 우리를 더 단순한 삶을 살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고요한 마음으로 나의 본질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것만이 세계의 본질에 가까이 가는 길임을...

예전에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학교장이 아주 폭력적인 언사를 일삼은 일이 있다. 모든 교사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그 말투를 생각하면 아직도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그러나 그 때, 나는 그 사람이 가엾어 보였다. 왠지 주변에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강퍅한 성격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는 듯한... 학년 회식에 지나가는 말로 참석하시겠냐고 물어 보면, 불쑥 와서 두 시간을 혼자 큰 소리로 떠들던 그 사람을... 어떤 사람들은 원수 보듯이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불쌍하다 했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만, 가엾은 사람. 적어도 그런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겠다... 그리고,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자. 결국 쓸쓸하게 퇴임해 버리던 그 날을 생각하면 그렇게 아둥바둥 잘난 체하며 살 것 뭐 있나 싶다.

적극적인 명상으로 <나를 쓸모있는 삶의 주인>이 되도록 깨어있자. <공+자비=행복>의 공식을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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