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리뷰 -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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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물결이었을때 나는 언덕이라 했다

당신이 뭍으로 부는 따스한 바람이고자 했을때 나는 까마득히

멈추어 선 벼랑이라 했다

어느 때 숨죽인 물살로 다가와 말없는 바위를 몰래몰래 건드려보기도 하다가

다만 용서하면서 뒤돌아갔었노라 했다

언덕뿐인 뒷모습을 바라보며 당신은 살았다 했다

당신의 가슴앓이가 파리하게 살갗에 배나올때까지도

나는 깊어가는 당신의 병을 눈치채지 못하였고

어느날 당신이 견딜 수 없는 파도를 토해 내 등을 때리고

한없이 쓰러지며 밀려가는 썰물이 되었을때

놀란 얼굴로 내가 뒤돌아 보았을때

당신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거리로 떠내려가 있었다

단 한 번의 큰 파도로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당신을 따라가다 따라가다 그만 빈 갯벌이 되어 눕고 말았다

쓸쓸한 이 바다에도 다시 겨울이 오고 물살이 치고

돌아오지 못한 채 멈추어선 나를

세월은 오래도록 가두어 놓고 있었다(도종환, 섬)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람이 사람과 닿고 닳아서

미음이 이응이 되는 일을,

사랑이라고 그랬다.

 

그러나 그 사랑의 끄트머리에 '이별'은 정해져 있는 일이라.

회자정리라고 딱부러지게 정리해 두었던 모양이다.

 

이 책에선 사랑에 대한 시와 노래에 대한 글들이 많다.

사랑하지 않고, 그저 이별을 노래한 시는 절창일 수 없기 때문이다.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이란 영화가 뻔한 멜로물인데도 불구하고 시집과 함께 히트했던 배경에는,

도종환의 저 시에서 말한 바처럼,

이별은 나를 '갯벌이 되어 눕고 말'게 하고,

세월은 그렇게 '오래도록 나를 가두어 놓고' 있는 아픔이란 걸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시와 소설에 등장하는 이별 이야기를,

<전조와 실연의 정황>

<부정과 슬픔의 정황>

<대처>

<분노, 애도>

<사랑>

이런 주제로 사랑 이야기를 풀어 본다.

 

사랑에 대한 시와 소설들이 얼마나 세상에 많은지를 읽고 싶어하는 이라면,

이 책에 등장하는 시와 소설들이 마치 '교과서적'으로 알려줄 것으로 기대해도 좋다.

다만, 저자의 글은 간혹 딱딱하고, 간혹 현학적이어서, 읽는이를 두렵게 하는 점을 미리 염두에 둬야 한다.

좀 쉽게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들이 많다.

연애편지를 어렵게 쓰는 사람은 없다.

글쓴이가 쓴 용어들이 '사랑과 이별'이란 주제보다 더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들은 아쉽다.

비평가(평론가)라는 사람들의 '그들만의 언어'를 즐겨쓰는 것은,

행복한 사람들은 고만고만하게 살고, 불행한 가정에는 나름나름의 이유가 있다던 톨스토이의 편안한 언어에 비하면,

독자에게 이물감을 느끼게 하기 쉽다.

 

'호모 세퍼러투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이별을 강조하고자 하지만,

'호모 에로스' 안에 이미 '이별'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별'은 기대에 대한 부정이며, 사랑에 대한 부정인 것이므로,

사랑의 반대편에 이별이 놓인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책'의 마지막 장이 '죽음'이 되듯,

'사랑이란 책'의 마지막 장이라면 으레 '이별'이 될 것이므로...

 

사랑이란 책의 마지막 장(章)을 아름답고 멋지게 장식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 쓰고 있는 '장'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내야 할 일이다.

그것이 어려워서, 그래서 이렇게도 많은 사랑 이야기들이 놓여있는 것이다.

기다리고, 애태우고, 다투고, 토라지고, 화해하고, 하는 모든 과정은 사랑이란 책의 중간 부분에 들어가는 당연한 조미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좀 밋밋한 맛의 사랑에 '귀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키스'처럼

짜릿하게 심금을 '둥~~' 울려주는 향신료의 강한 소스 냄새들을 가미한 것들이다.

 

'사랑'을 '결혼'이나 '연애'와 대등하게 놓는다면,

진짜 사랑이라는 천칭저울은 균형점을 찾을 수 없다.

'사랑'은 '삶의 과정'을 모두 포괄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의 짜릿함만을, 그 달콤한 순간만을 탐닉하는 하이틴 로맨스 풍의 소설은 모두 '결혼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고 말지만, 진정한 사랑은, <사랑과 전쟁>의 시기를 모두 거치고,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되는 우정>이 되는 경지까지 나아가야 한다.

 

니체의 말,

친구가 된 뒤에도 푹신한 침대가 아닌, 야전 침대가 되라고...(125)

 

결혼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푹신한 침대를 상상했던 부부에게,

그 이후엔 더 딱딱하고 불편한 야전 침대가 결혼생활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 야전 침대를 걷어차고 새로운 푹신한 침대를 찾는 일은 부질없다.

야전 침대에 익숙해 지고, 결국 야전침대에서 <위로와 힘이 되는 우정>을 찾을 수 있어야, 올바른 친구일 것이다.

 

사르트라는 '연인'(타자)은 지옥이라고 했다.

그것은 시선의 문제였다.

타자의 시선에 언제나 걸려드는 자아는 지옥 속에 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146)

 

사랑의 초기에 가슴떨림과 울렁거림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싫다는 열망과도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가슴떨림과 울렁거림이 사라진 단계를 '지루해' 하는 것은,

좋은 의미라면 그 지옥의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여 수료증이라도 받아야 하는 단계인데도,

새로운 가슴떨림을 좇아 가기 쉽다.

그래서는 <위로와 힘이 되는 우정>을 찾기보담은,

지옥이라는 롤러코스트를 '자유이용권'을 이용해서 반복 이용하는 사람과 같다.

 

김형경은 심리, 정신분석 쪽으로 탁월한 공부를 한 소설을 쓴 사람이다.(난 별로 재미있게 읽진 못하지만...--;)

 

에로스와 리비도가 완벽하게 결합하고,

아이부터 노인의 영역에 이르는 정서를 마음대로 오가며,

그 위에서 정신적 성장, 정서적 고양, 영혼의 확장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199)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는 짜릿함과,

같은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나눌 수 있는 정서적 공감대의 포괄성,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부터

책을 읽고 나누는 깊은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뜻하는 것이라면,

니체나, 김형경이나, 아주 이상적인 그런 친구를 상정하고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사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사랑은 미지의 존재와 미지의 행위를 하고 미지의 감각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그래서 사랑은 태만할 수가 없다.

익숙한 사랑이란 없다.(237)

 

김훈의 '공무도하'의 문정수와 노목희를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읊조린다.

둘은 하나를 지향하지만, 하나가 될 수 없고,

둘이 또렷이 서서 행복하다면... 그들을 하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노희경)

 

결국 '이별 리뷰'는 사랑 리뷰라는 책의 마지막 챕터에 불과한 것이다.

 

작가가 한국 문학만으로 이런 이야기를 얽어낸 것으로 볼 때,

조만간 세계 문학으로도 좋은 이야기책을 엮어내지 않을까 싶다.

 

독자가 책을 읽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독자가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좀더 조곤조곤하게, 정감있고 친절하게~

고등학생 조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정도로,

쉽고도 열정적으로 '안나 카레니나'를, '닥터 지바고'를, 그리고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읽어주길 기다리다.

 

맞춤법 고칠 곳 한 군데~

 

25. 무슨 일을 하던 간에... '하든' 간에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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