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이드 전쟁 -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 사건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1897년 6월, 뉴욕의 한 부둣가에서 빈들거리던 아이들이 방수천에 싸인 채 바다에 떠있던 시체 토막 하나를 건진다. 비슷한 시기, 뉴욕 브롱크스 숲으로 버찌를 따러 간 가족들이 가시덤불 사이에서 심하게 썩은 한 남자의 몸통을 발견한다. 며칠 뒤, 지나가던 배에 부딪힌 시체 꾸러미를 사람들이 바다에서 건져낸다. 한편, 롱아일랜드에서는 한 농부가 자기 오리들 깃털에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처음에 단순히 의대생들의 장난이라 여겨졌던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기운이 감지된다. 뉴욕 곳곳에서 발견된 시체 토막들이 한 사람의 것이고, 시체 조각들을 싸맨 방수천이 같고, 머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뉴욕의 모든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 경쟁에 들어가면서 이 사건은 1897년을 뜨겁게 달군, “세기의 살인 사건”이라 불릴 “이벤트”가 되고 말았다. 이 시체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이며,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일까?
저자 폴 콜린스는 방대한 양의 신문 기사, 사후 수기, 인터뷰, 광고, 법원 기록 등 실제 자료를 토대로 이 충격적인 토막 살인 사건을 완벽하게 재구성했다. 사실(Fact)을 바탕으로, 하나도 덧붙임 없이 흥미진진한 법정 추리 소설(Fiction)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알라딘 소개글)

 

논픽션이라고 해서 흥미로운 요소가 적을 줄 알고 시작했는데, 착각이었다.

토막난 사체를 둘러싼 범인 잡기를 중심 사건으로 해서,

그 사건은 오히려 왜소해 보일 만큼 신문들의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 진다.

 

잉크와 펄프로 만들어진 놀이동산.

 

이런 것이 '선정적인' 언론의 본모습인 것이다.

1890년대 뉴욕의 '월드'지와 '저널'지의 경쟁은,

선정적인 볼거리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옐로 키드'라는 만화를 계기로

옐로 저널리즘, 즉 황색 신문이란 말로 비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시대상이 이 이야기에서처럼 생생하게 전개되기도 힘들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추리물의 흥미진진함과 사회물의 현실성이 아찔할 정도로 독자를 이끈다.

 

1898년 초, 쿠바에 정박중인 미 해군 메인호가 의문의 폭발로 붕괴되어 배와 승무원 대부분이 아바나 바다에 수장된 일.

<확실한 전쟁! 스페인이 메인호를 폭파시키다>라고 저널이 선언했다.

전쟁도 폭파범도 확실하지 않았는데도(갑판 아래서 발생한 석탄 화재가 원인이라 보는 사람이 많았다.)

허스트는 확고했다.

전국이 전쟁의 열기로 요동친다고 <저널>은 주장했다.(361)

 

아, 이 부분을 읽으면 천안함이 떠오른다.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아니,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사실조차도, 기사로 대서특필하는 뭔 신문이랑 하는 논조가 비슷하다.

 

그 시대, 살인 사건을 둘러싼 황색 저널리즘의 행보를 읽는 일은 코믹하고, 흥미롭다.

그렇지만, 그와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도 여전히 황색 저널리즘의 폐해는 생생하게 약동하는 현실을 느낄 때,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나서 뒷입맛은 쓰디쓰기만 하다.

 

<시사상식> 옐로 저널리즘

접힌 부분 펼치기 ▼ (네이버 지식 백과)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선정적이고 비도덕적인 기사들을 과도하게 취재, 보도하는 경향을 이름

1890년대에 뉴욕 시의<월드(World)>지와<저널(Journal)>지 간에 벌어진 치열한 경쟁에서 사용된 술수들을 지칭한 데서 생겨났다.

조지프 퓰리처는 1883년에 뉴욕의 <월드>지를 인수하여 화려하고 선정적인 기사와 대대적인 선전을 통해 미국 최고의 발행부수를 확보했다. 퓰리처는 '신문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치는 도덕 교사'라고 믿는 한편, '재미없는 신문은 죄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만평과 사진을 화려하게 쓰고, 체육부를 신설해 스포츠 기사를 비중있게 다루었으며, 흥미와 오락 위주의 일요판도 처음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주의에 호소함으로써 이른바 옐로 저널리즘을 탄생시켰다. 1895년 캘리포니아 광산재벌의 아들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뉴욕시로 옮겨와 경쟁지인 <저널>지를 인수하면서 퓰리처의 아성에 도전했다. 이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이그재미너(Examiner)>지를 대규모 발행부수로 대단히 성공적인 신문으로 만든 경력이 있었던 허스트는 선정주의와 홍보, 일요특집판 등을 이용하여 경쟁지들을 물리쳐 뉴욕시에서도 같은 업적을 이룩하고자 했다. 그는 편집진의 일부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데려왔으며 또 일부를 퓰리처의 신문에서 스카우트해 왔다.

그 가운데는 <선데이 월드(Sunday World)>에서 대대적인 인기를 끌던 연재만화 '옐로 키드(The Yellow Kid)'를 그린 시사만화가 리처드 F. 아웃콜트도 있었다. 아웃콜트의 변절 이후 <월드>지의 만화는 조지 B. 룩스가 그렸는데 두 경쟁지의 연재만화가 사람들의 열띤 관심거리로 등장하면서 두 신문 간의 경쟁은 옐로 저널리즘이라고 지칭되었다. 이러한 총력적인 경쟁과 그에 따른 판매촉진방법들은 두 신문의 발행부수를 크게 늘렸으며 또한 미국 여러 도시의 신문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옐로 저널리즘 시대는 20세기로 접어든 직후 <월드>지가 점차 선정주의적 경쟁에서 물러서면서 종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옐로 저널리즘 시대의 몇 가지 기법, 예를 들면 전단표제라든가 천연색 만화, 풍성한 화보 등은 지속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펼친 부분 접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