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
김도언 지음 / 이른아침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도언.

몇 권의 소설집을 냈고, 시도 쓴다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젊은이.

그의 글들은 다분히 서정적이고, 시적이지만,

그 시의 구절들은 또한 다분히 주관적이어서 독자의 시선을 튕겨내는

만만치 않은 맞받아침이 있다.

 

그의 글을 읽는 일은 좀 재밌고, (난 이 책이 처음이지만...)

그치만 이런 류의 일기들을 어수선하게 책으로 낸 것은 좀 못마땅하고 그렇다.

 

우리는 무엇때문에 살고, 왜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즉사한다.

사실, 대답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질문에 대응하고 작동하는 정신의 힘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18)

 

한용운 스님의 '알 수 없어요'를 가르치면서, 참 세상 이치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런 문장을 만난다.

인간이 숨을 쉬는 현상이 기적이지만,

내 심장의 세동이 나를 살아있다!고 판단하게 하지만,

냉철한 정신이 순간순간 나의 정신을 일깨우지 않는다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겠다.

 

그렇지만 질문을 잘 하는 것, 이런 철학적 질문은 머언 길을 둘러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뜨겁게 키스할 때, 정작 연인의 표정을 볼 수 없다.

너무 밀착해 있다는 건, 읽을 수 없는 조건에 직면해 있음이다.

따라서 거리를 갖는다는 건, 상대를 정확히 읽고 그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섬세하게 고려해야 할 중요한 미션.(29)

 

자기가 삶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서 깨달음이 함께 오지는 않는다.

적절한 거리감, 적절한 온도... 이런 것이 필요하다.

 

에밀 시오랑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나 자신을 견딥니다."라고 대답했다.(45)

 

갑작스런 깨달음(돈오)와 지속적인 마음챙김(점수)가 종교의 과제인 것도 그런 모양이다.

세상에서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일이나,

적절히 뜨겁고 적절히 냉철한 온도를 유지하는 일은 인간에게 애초에 가능한 일도 아닐는지도...

 

모든 문장은 온도를 가진다.

좋은 문장은 적정한 온도를 가진 문장이다.

문장의 온도를 통제할 감각을 가지지 못한 작가는 불행한 작가이거나 가짜다.(68)

 

그의 이 책은 미지근한 온도일 때가 많다.

잡다한 일상사를 적는 부분들이 그렇다.

자신에게는 중요한 사람들일지도 모르는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과 마시는 이야기가

그의 기억에선 뜨거운 각인일지 몰라도,

천국에서 즐기고 있는 남의 술자리에 끼어든 맨정신인 사람은 3차까지 따라가면 그곳이 지옥이다.

 

싫은 것을 분명하게 싫다고 말하는 기술은 20년 전에서 조금도 늘지 않았다.(77)

 

한국 사회의 동창회, 직장 회식, 이런 것들이 참으로 이런 면을 가지고 있다.

싫다고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어른스럽다면서 추켜세운다. 아마도 다들 속으론 무시할지 모른다.

 

어딜가나 조숙하고 어른스럽다는 이야길 들으며 자랐다.

그런 소릴 듣는 비결은 간단하다.

웃지 않으니까...

나는 정말 잘 웃지 않는 아이였고 소년이었다.

웃을 일이 좀체 없었던 거다.

내 앞메선 그냥 마음 놓고 무장해제하시라.

긴장도 하지 마시라. 긴장은 내가 하겠다.(112)

 

철부지 아이들은 잘 웃는다.

초상집에서도 까르르 웃는 건 아이들뿐이다.

초상집이랬자, 죽은 사람은 슬퍼하지 않는 장소인걸~

아이들은 좋으면 좋다고 바로 말한다.

행복하게 사는 길은 아이처럼 사는 일일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천국이 그들의 것'인 이유.

그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성원들은 참 웃을 일 없었다.

아니, 까르르 웃으며 천방지축 자라는 '청춘'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기분이다.

그는 개인적인 성격처럼 이야기하지만, 기실 그 성격 역시 사회에서 그늘진 바 크다.

 

사회의 그늘은 가정에도 드리운다.

 

부끄럽고 불편하고 두렵다.(119)

 

그에게 가정, 가족은 그런 존재다. 나 역시 그렇다. 그게 사회가 드리운 그늘이다.

 

허만하 선생의 시론을 모아놓은 <시의 근원을 찾아서>를 다시 읽고 있다.

어떤 페이지는 수십 번 읽었고, 어떤 페이지는 두세 번 읽었다.

당신이 지향하는 근원에 닿기 위해 감각의 너비와 사유의 깊이를 자유자재로 하지만 삼엄하게 운용한다.(160)

 

이런 글이라면 한번 만나고 싶다.

그는 11월을 좋아한다.

 

에곤 실레의 드로잉도 그렇지만 제프 버클리의 음색은 11월의 깊은 밤 겨울을 불러오는 바람의 목소리를 닮았다.

봄이 오는 즈음에 11월의 표정과 목소리를 읽는 것.

어쩌면 이것은 내 소소한 변태 취향인지 모른다.(213)

11월이면 나는 가장 극적이고 명료해진다. 어쩔 수 없이 말이다.(251)

 

그의 글들을 읽으면,

괜히 어깨를 옹송그리면서, 조금 불편한 자세로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든다.

기회가 되면,

그의 소설이나 시에서 본격적인 그의 시선을 견뎌 보고 싶다.

그가 견디는 온도는 어떤 것인지, 글에서도 느껴질 것 같으니까...

 

이 책에서 세 번이나 읊조린 계용묵 선생의 조용한 장례식장 이야기처럼,

삶이든 죽음이든 너무 소란스런 것은 나도 사절이니...

남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에 신경쓰느니

사랑한다는 말 한 번이라도 더 하고 사는 게 잘 사는 건지도 모를 일이니...

 

=====================

고쳐야 할 곳 몇 군데...

뒷부분으로 가면서 집중력이 약해진 탓인지...

오래된 글들이어 그냥 둔 건지... 어색한 곳이 더러 보인다.

 

248. 술 마신 다음 날에는 숙취 효과까지 있는 것 같은 캐모마일... 숙취 해소 효과라고 해야지 ㅋ~

      피로회복제 박카스~도 마찬가지다. 피로는 해소해야할 대상이니, 피로해소제, 활력회복제라 써야한다.

 

    중요한 사안을 컨펌 받으러... 확인? 확답?

    자본이 갖는 에피세트 자체가 잔인하고... 무슨 세트???

 

278. 신문기자들의 외소성과... 왜소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