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나를 기억하라
틱낫한 지음, 서보경 옮김 / 지혜의나무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아침에 깨어나자 마자, 나를 기억해야한다. 아침형 인간이라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가서 세상의 잡다한 번사를 읽어대고, 몇 개의 화분에 물을 뿌린 후,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샤워하고 아침먹고 출근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아침에 깨어나자 마자 나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더군다나 나처럼 지각의 마지노선까지 한쪽눈을 찡그려가면서 시계를 바라보고 '오분 더'를 생각하다가 '후다닥 출근'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침에 깨어나자 마자 나를 기억할 방도는 없다. 깨어나자 마자 '늦었다!'는 생각에 일분 일초를 아껴 이닦고 세수하고 면도하는 매일 해야하는 몇 가지 잡무에 시간을 촉박하게 쓰고 마는 것이다.

<오늘>이라는 <선물>을, 그 귀하고 고마운 선물을 생각하면 한없이 게으름을 부릴 순 없는데도 말이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다들 쿨쿨 휴일의 단잠을 만끽할 시간에도 어린이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선물의 행방을 찾아 좁은 집안을 여행하지 않던가. 그러다 선물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 그 의기양양한 모습이란... 매일 아침,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초롱한 눈빛으로 깨어나, 나를 기억해야 한다. 나의 존재의 가치를 행복하게 온 몸으로 느끼고, 짧은 시간이나마 대지의 순환에 감사하고, 화산재에 파묻히지 않은 나의 존재를 감사하고,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 혈관을 줄기차게 달리는 피톨들, 들숨과 날숨을 편안하게 인도하는 신의 숨결을 행복하게 느끼는 시간이 필요하다.

절에서는 종을 친다. 그 종 소리를 들으면서, 문득 깨달아야 한다. 나는 절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나를 일깨우는 깨우침의 소리이고, 평화를 널리 퍼뜨리는 소리라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더랬다. 성당이나 예배당에도 종이 있고, 가끔 그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요즘의 번잡한 속세엔 종소리를 듣기 어렵지만, 나같은 선생에게는 하루에도 수십번의 차임벨이 있지 않은가. '나를 깨닫게 하는' 수십 번의 종소리가. 그리고 전화기에서 울리는 벨소리...

나는 기독교인들이 밥먹기 전에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우습게 바라본 적이 있다. 밥먹는 시간까지도 깨어있어야 하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전화 받기 전 세 번의 호흡, 밥먹기 전 세 번의 호흡, 아, 이것이 <참을 인자 세 번 쓰면 살인을 면한다>는 그 진리였구나... 세 호흡만 숨죽이고 세상을 보기, 나를 깨닫기... 수업 종소리를 듣고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황소와 같은 눈을 하는 교사들을 나는 보았다. 세 번의 호흡으로 도살장 신세를 면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어찌 <경이로운 순간>이 아닐 수 있으랴.

우리가 쫓아가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우리는 자신으로 돌아가서 숨쉬기와 미소짓기와 우리 자신과 아름다운 환경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구름을 따르다,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음을 깨달은 강물처럼...

이 책은 한 주제로 일 분 정도의 읽을 거리를 마련해 놓았기 때문에 화장실에서나 목욕탕에 몸담그고 있을 때나 쉬는 시간이나 라면끓일 물 올려놓은 시간에도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점이 북한말로 <웃점>인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