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다고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인가 -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 충청 편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
이지누 지음 / 알마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이근원통 耳根圓通

이근을 닦아야만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볼 수 있으며,

편벽되지 않고 두루 통할 수 있다.

그 수행은 소리에 집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이윽고 소시로부터 떠나는 것으로 완성된다.

소리는 듣는 것인지 (觀聽), 보는 것인지(觀音)...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 충청도 편

 

이지누의 글은 정갈하게 흐르다

감정의 골이 푸욱 패인 골짜기에 이르러서는

자신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진한 마음을 풀어 헤치기도 한다.

그래선지 그는 가득 차있는 전각들 사이를 누비기보다는,

텅 빈 곳,

그래서 햇빛보다는 오히려 달빛의 으스름이,

고요한 수직의 파문을 즐기는 한적한 시간이,

빈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폐사지를 찾아 거닌다.

 

그의 사진들에서도 서정은 가득 묻어난다.

이근원통이 깊어지면 반문문성 反聞聞性에 이른다고 한다.

 

여태 내 속에서 나는 소리와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매달리며

소리 자체에 대한 집중을 심화시켰다.

하지만 결국 내가 가서 닿아야 하는 곳은

모든 소리에 대한 집중을 놓아 버리고,

소리로부터 떠나버리는 무설시 無說示의 경지가 아니겠는가.(219)

 

'견,문'을 기록하는 것을 기행이라고 하는데,

그는 보고 듣는 것에 매달리지 않으려,

아니 거기서 벗어나려든다.

그곳에 과연 무엇이 있을지...

아니, 무엇도 없는 그곳에서 '두루 통하는' 원통의 지경을 얻게 될지는 직접 밟아볼 노릇이다.

 

지붕 정도는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

밤새 낙엽 지는 소리가 소나기처럼 귓전에 맴돌아 잠 못 이뤄도,

도토리를 찾아다니는 다람쥐 발자국 소리가 외할머니 잔기침 같아서

자꾸 신경이 쓰여도 말이다.

까짓 벽도 없어도 괜찮겠다.

한기를 가득 머금은 찬바람이 몸을 어르고

지나가 며칠째 선잠에 시달리더라도,

맑은 별빛과 형형한 달빛을 담뿍 받고 떨어져내린 나뭇잎을 이불로 삼으면

추위에 뒤척이며 추슬러야 할 일은 없을 것.

지붕 없고 벽 없는데 바닥이 있을 것은 무엇인가.

낮이면 이미 바닥에 깔린 낙엽을 포단 삼고,

밤이면 그 자리 그대로 깔고 누우면 그만인 것을.

그렇게 한 철 나면 법당이 화려한 들 무슨 소용일 것이며,

찾는 이 드물 것 뻔한 법당에 장엄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하루가 다르게 단풍이 물들어가는 판에 울긋불긋 단청을 할 일은 또 무엇일까.(216)

 

이렇게 폐사지의 지붕도, 벽도, 바닥도 없이

그것 그대로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것처럼 묘사한 그의 언어가,

부처님의 연꽃 가득한 세계를 치장한 '화엄'의 경지 아닌가 싶다.

 

나뭇잎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은 아름다운 안화가 되어 달려들고,

낙엽은 나풀거리며 닥쳐오니 제대로 눈도 뜰 수 없었다.

하지만 뜨지 않아도 좋았다.(208)

 

일본어에 '꼬모레비'란 단어가 있다.

나뭇잎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을 아예 하나의 단어처럼 숙어로 굳어져 쓰는 말이다.

그걸 이지누는 '안화', 눈에 비치는 꽃살무늬...로 보고 있다.

모두.... 아름다운 이의 눈에만 보이는 세상이고, 말의 잔치다.

 

꽃조차 귀양살이를 할 만큼 적막하고 고요하기만 한 곳.(66)

 

그런 마음일 때가 있다.

정호승도 그런 시절 쓴 시가 있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죽은 친구의 마음 사리 하나 넣어둘

부도탑 한번 세운 적 없지만

폐사지에 처박혀 나뒹구는 옥개석 한 조각

부둥켜안고 산다

가끔 웃으면서 라면도 끓여먹고

바람과 풀도 뜯어 먹고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산다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 마라

너를 용서하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 (정호승, 폐사지처럼 산다)

 

그의 깨달음을 좇아가는 마음의 길은 평화롭고, 조용하고, 웃음으로 가득할 수 있다.

 

사랑이 깊으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그 무엇을 한들

그가 드러나기보다

나 스스로가 드러난다는 것.

그것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일 뚠

결코 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것.(315)

 

사랑이든 우정이든,

무엇에 대한 애정이든...

기침과 사랑은 감출 수 없는 것이랬다.

깊은 사랑은

상대방에게로 향하는 마음이 크고 깊을수록,

자기가 크고 넓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 자연스럽게...

시나브로... 자기도 모르는 새 조금씩 조금씩 전염되고 물들어가서,

번지고 퍼져서...

세상에 가득 사랑으로 미만(彌漫, 널리 가득차 그들먹함) 할지 모를 노릇이다.

 

글씨 또한 그렇다.

 

내가 느낀 김생의 글씨는 그 어떤 것도 부러뜨리거나 헤쳐놓지 못할 만큼 견고하며 동시에 부드러웠다.

글씨가 어찌 손끝의 재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겠는가.

그것은 수행의 결과이며 마음의 통로가 아니겠는가.

글씨를 두고 사람들이 신품이라고 하는 것은

글씨로서 훌륭할 뿐만 아니라,

수행이 깊고도 단단했던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 아닐까.(350)

 

글씨가 스르르 풀어져

종이로 번져나가 버릴 것 같은 사람도 있고,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박또박하기가 송곳으로 종이에 새겨놓은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글씨도 사람의 품격을 보여주는 한 단서인데,

이런 글을 읽으면서, 내 글씨를 물끄러미 보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다른 이들에게 비칠까를 돌아보기도 하게 되는 경험.

 

폐사지를 훑고 다니는 이지누의 눈길과 귀와 발길을 따라 거니노라면,

환하게 다사로운 봄볕도 만나게 되고,

뉘엿뉘엿 이울어가는 초저녁 노을빛도 감상할 수 있고,

한겨울 시리도록 새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섰는 석탑의 무료함도 만날 수 있다.

 

그의 글을 읽노라니,

마음이 한뼘은 열리는 기분이다.

한 뼘 안으로 그만큼 환한 햇살이 번질 공간을 열어주게 하는 고마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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