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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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유명하다.

이 소설은 특이하다.

이 소설은 신기하다.

이 소설은 재미없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궁금하다.

 

19세기 월스트리트에 취직한 필경사 바틀비.

필경사는 열심히 남의 서류를 베끼는 작업에 몰두해야 하건만,

바틀비는 아무 이유도, 연유도, 까닭도, 연원도 밝히지 않고,

무작정,

저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반복하여 말한다.

 

이 소설을 들고 있으면서, 당혹스러웠고,

도대체 이야기하는 바가 뭘까 의아했고,

바틀비의 경직된 자세에 내가 다 어쩔 줄을 몰라하며 읽었다.

 

결국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갖게 되는 느낌은,

작가는 이 책을 통하여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려한 것이라기보다는,

작가는 이 책의 바틀비를 통하여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왜 자신이 해야할 일을 고집스럽게 안 하겠다는 말을 반복할까?

현대의 파편화된 인물들은 이유없이 어떤 일엔가 몰두하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전체 조직이나 구조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은 채...

 

바틀비가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한 것은

'하지 않겠다'와는 다른 느낌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관료사회를 살아가는 파편화된 개인들에 대한 반성도 좀 하게 되고,

과연 현대 사회에서 '선택'이란 가능한 것인지도 돌아보게 된다.

 

검푸른 바다로 흰 고래를 잡으로 떠나던 현대의 오딧세이아를 쓴 멜빌이,

대도시 한복판에서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온몸을 돛대에 묶고 눈과 귀를 모두 가려버린 오디세우스처럼,

어쩔 줄 몰라하는 '벽'으로 가로막힌 월 스트리트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불현듯 나타난 바틀비의 강경한 목소리는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도돌이표를 되밟는 일상을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어떤 '부정'과 '선택'의 가능성이 있는 블루 오션도 원래는 존재하였음을...

그리하여, 블루 오션을 향한 항해의 가능성을 열어 둘 수도 있지 않겠냐는 물음을...

불친절하게 툭, 던져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했다.(27)

 

바틀비는 우리와 다름없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가 주어진 일을 거부하면서,

아니, 안 하는 편을 '선택'하면서,

그는 두 눈의 모습이 달라진다.

 

우리는 두 눈이 바라보는 세상은 같다고,

하나의 초점으로 상이 맺힌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선택' 이후, 좌우 양안에 비추이는 세상은 전혀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다양한 생각을 시작하게 만드는 바틀비,

그의 불친절함에 대하여,

그의 불친절한 '선택'에 대하여... 생각만 많고,

삶의 선택엔 정답이 없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금요일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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