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석원의 서울연가
사석원 지음 / 샘터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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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문에 연재한 사석원의 글과 그림을 모은 책이다.

이야기가 가볍고 경쾌하지만,

예술가의 치기가 가득 묻어있기도 하다.

주로 술마신 이야기, 술마시러 다닌 이야기, 술마시면서 만난 사람 이야기, 술집 이야기로 질펀하다.

 

그림의 질은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신문에 실으려고 슥슥 그려 그렇겠지만,

몇가지 주제를 잘 함축한 그림엔 눈길이 갔고,

사람사는 북새통을 그린 그림들은 별로였다.

 

그의 그림들 중, 남산골 딸깍발이를 그린 것이나,

인사동 천상병의 귀천을 그린 것,

청량리 아가씨를 동백에 비유한 표지화 같은 것은 나름 멋진 그림들이기도 하다.

 

 

그가 나보다 대여섯 살 많으니,

7,80년대 서울 풍경을 기억하는대로 적고 그리는 점은 풍속도로 읽을 만 하다.

가~끔 그의 글맛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

몇 부분만 옮겨 놓는다.

 

나는 민중미술 작가들을 불편해했다. 성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거칠었다. 그들의 뒤풀이 장소는 부글부글 끓는 활화산 같았다.

화나면 화나는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날것의 상태로 드러냈다.

복숭아꽃이 활짝 핀 것을 보고는 선홍색이 너무도 흥분된다며 꽃밭에 들어가서 용두질을 하고야마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솔직한 작가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근현대미술에서 민중미술 말고 자생한 것이 있었을까?

민중미술을 빼면 모두 다 수입한 것이다.

우리 것이 아니었던 셈이다.(147)

 

자기와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열린 시각으로 볼 줄 아는 마음도 그의 이점이기도 하다.

 

스무살이 되었고 대학생도 되었다.

대학은 그전과는 딴세상이었다.

이전 세상이 밝거나 어두운 정지화면이었다면

대학생활은 점멸하는 네온사인처럼 쉴 새 없이 선과 악이 교차했다.

때론 열광하고 때론 아프고 때론 애틋한 젊음의 몸부림이 있었다.

진실도 모른채 집단의 신념에 충실하기도 했다.

때로는 갑자기 피었다가 갑자기 지고 마는 벚꽃처럼 간교한 사랑의 술수에 휘말렸다.

그래서 목덜미에 창이 꽂힌 노루처럼 오랫동안 죽은 듯이 늘어져 있기도 했다.

대학은 달콤한 꿀물과 매혹적인 분내와 쓰디쓴 독배를 동시에 내게 안겨주었던 알 수 없는 곳이었다.(166)

 

젊은 시절을 이렇게 묘사해 내기도 쉽잖은 일이다.

 

원래 서울 여인들은 수더분하기보다는 깔끔하고, 푸짐하기보다는 야무진 느낌이 풍겼다.

꼭 조여진 버선발의 사뿐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잘 씻어서 껍질을 깎아놓은 생밤알 같다고나 할까.

곱고 사근사근한 말씨에 깍듯한 예의범절을 갖춘 서울 여인들.

알뜰하면서도 부지런하고 때론 지나치게 경우가 밝아 다소 차가운 인상을 풍기기도 했던 서울 아낙네들.

그녀들의 말은 졸졸졸 물소리같이 맑고 명랑했다.

서울 여인들은 비교적 말이 많고 빨라 받아 적기가 힘들고 힘을 빼서 발음해

억양에 변화가 적어 타지인들은 구별하기 힘들다고 했다. 또한 도란거려 무슨 재미난 소설 읽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랬던 서울 여인들의 토박이 말투가 지금은 오래된 영화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네 말투는 전국 팔도가 비슷비슷해졌다.

모두 같은 고향 출신인 듯 엇비슷한 음색으로 말을 한다.(260)

 

이런 글을 읽고 있으면

눈 앞에서 서울깍두기처럼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서울 여인 한 명을 만나는 기분이다.

 

서울의 추억이 담긴 지명들이 거론될 때면,

나도 옛추억에 잠길 수도 있었고,

그의 술판에서 술마시지 않고도 거나해진 기분이 되기도 했다.

 

사석원의 그림과 글을 좋아하지만,

좀 잡스런 글들이라 아쉬운 점도 많았던 책.

 

어느 인터뷰에서 문화일보 신세미 기자에게 사석원이 이런 말을 했다.

 

미처 읽지 못한 책들도 많아요.

그래도 일생에 한 번,

한 부분이라도 읽느다면 그 책의 소임을 다 한게 아닐까요?

 

책을 많이 읽기 힘든 학기 초,

그의 말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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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4-0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기초라 많이 바쁘시군요.
3월부터 백수인데도 책 잡기가 쉽지 않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