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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빛나는 순간 ㅣ 푸른도서관 6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3년 4월
평점 :
조조할인으로 파파로티를 보았다.
돌봐줄 사람도 없는 청소년 이장호의 인생은 조폭으로 끌려든다.
네 번째 학교로 전학온 김천예고에서 이장호란 청년은
괴팍한 성악 선생과 조우하게 되고,
청년의 가능성을 본 선생은 제자 이장호를 위해 진심으로 애쓴다.
이장호 역시 조직에서 벗어나 음악의 길을 가려 노력하지만 갈등은 많다.
결말은 해피엔딩~인 좀 뻔한 스토리지만,
제자의 유학길에 배웅나온 스승님께 큰절을 올리는 대목에서 한참을 눈물흘렸다.
청년 이장호에게 스승이 없었다면 그는 방황으로 인생을 맺었을지도 모른다.
재작년 학교 행사로 40명의 고딩들을 데리고 지리산을 넘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을 인솔한 것은 해병대 아카데미라는 단체의 훈련된 조교 2명이었는데,
지도교사라는 명목으로 따라붙은 나는 아이들보다 저질체력을 자랑하며 내 몸 간수도 힘들 지경이었다.
둘쨋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젊은 교관이랑 소주를 한잔 하게 되었는데,
그 교관은 거제도 장승포 앞바다 작은 섬에서 자랐고,
부산에서도 알아주는 깡패 학교를 다녀서 선생님이라면 자신들과 상관없는 사람들로 알았단다.
우연히 들어간 해병대에서 삶의 자침을 바로 잡아 수련원 조교로 일하고 있는데,
우리학교 고딩들과 같이 땀뻘뻘 흘리며 산을 넘고 애들을 돌보는 샘들을 보고 감동을 받았단다.
외로운 자기에게도 좀 더 따뜻한 선생님이 말걸어 주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며 그 체구좋은 청년이
흐느껴 울던 그 밤,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이금이의 청소년 소설이 점점 성장한다.
여기엔 내가 근무하는 학교와도 환경이 비슷한 우수학생 집단인 기숙사 학교가 등장한다.
그곳에서 다양한 아이들이 벌이는 갈등은 유치한 고등학생 드라마처럼 시시할 것 같지만,
럭비공처럼 튀는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을 조바심치게 만든다.
기숙학교에서 살면서 남달리 스트레스를 받는 다양한 환경의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다.
어른들은 쉽게 말한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는 복지나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은 곳이어서,
공부가 인생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어른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땅에선 어떤 입시제도에도 알맞는 '치열한 사교육'이 발생하는 것이다.
날 세워 말하면, 이 땅엔 공교육이 없는 셈이다.
엄마는 늘 석주의 행복을 바라며 그것을 위해 전략을 세워주었다.
하지만 진짜 행복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230)
이런 것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이 땅의 부모들이다.
부모들이 지나온 경험을 잣대삼아 내세우는 미래의 모습은...
실제 나아갈 미래의 모습과 판이하게 다를 것임을 부모들은 인정하기 싫어하겠지만...
오만 잡놈 다 만나 봤는디
머리에 똥만 든 놈보다 악질이 머리에 먹물 든 놈이라게.
그놈들은 만사를 저울에 달고 자로 재 뿌려야.
그 저울질에 미스 고 니가 근수가 맞을 중 아냐?(266)
우리가 최고로 치는 공부, 공부... 그 지식에 치우친 주입의 노릇이,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로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경쟁만을 위한 그것이었다는 점이 문제다.
결국, 공부를 잘못한 사람들... 머리에 먹물 든 놈들이,
만사를 칼질하고 저울질한다.
하느님이 그토록 먹지 말라고 만류했던 과실의 이름이 '선악을 구별하게해주는 과실'이었음에랴...
판단에서 차별이 나온다. 잘난 체 하는 인간을 기르기 위한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살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목록' 보다
'그럴 수도 있지 목록'이 더 늘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282)
모든 일은 환경에 따라 다르고 사정에 따라 다르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 아예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게 세상이다.
그런데 늘 정답 하나만 고르던 아이들에게 닥치는 세상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처럼 비명을 지르는 지옥도에 다름아닐지도 모른다.
살면서... 어른이 되어가면서... 인정하게 되고, 체념하게 되는 것이 삶의 진행 방향일지도...
인생은 우연으로 시작해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겄나.
사는 기 평탄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
고난이 닥쳤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마 그제사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기다.(304)
인간은 인생의 방향을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숱한 명리학, 점성학, 역학이 발달하였지만,
인생은 숱한 우연과 선택의 기로를 마련해 두고 있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불행'이라는 선택지를 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내려다보는 신이 있다면,
참으로 아쉽기 짝이 없는 노릇이겠지만,
언제까지나 '행운'이라는 운명의 선택지만을 가려 뽑을 재간은 누구에게도 없는 법.
이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운명의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선택의 주체도 나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지고 웃으며 살아야 할 사람도 나임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파파로티란 영화 속의 '이장호'란 청년이
힘든 과정을 거쳐 음악을 선택하고, 자기 삶을 일으켜 세우기까지 애태웠을 불면의 밤들 역시...
그런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와서 쏟아지는 감동의 눈물을 선사하는 것 아닐까?
나랑 하룻밤을 새우며 술을 마시던 그 교관 청년 역시,
자신의 선택에 좀더 힘을 줄 수 있었던 선생님들이 있었더라면... 하는 회한에 가득했던 것이기도 하듯,
나랑 지내는 아이들이 훗날,
그런 회한으로 눈물짓지 않도록... 아이들이 단단해 지도록 가르치는 데,
이런 이야기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허나...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선택의 몫은 역시 독자의 몫임에랴...
삶의 고난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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