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 그리운 시절에 살다 - 화가 최용건의 라다크 일기
최용건 지음 / 푸른숲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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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시간에 걸쳐 책을 읽고난 소감은, 한마디로 '별로'였다.

작가 최용건은 수묵화에 채색을 입히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인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다 훌쩍 라다크로 가서 일년을 살았다. 그 훌쩍 떠남이 더없이 부러울 따름이지만, 루이와 미애의 버스여행처럼 그 시시콜콜한 사연을 다 듣자면 부러움이 반감될지도 모른다. 자잘한 우여곡절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살아 볼수록, '소박한 행복'을 그리워하는 듯한 내 핏줄 속에는 이미 <도회의 번잡한 불행>을 더 즐기게 되어버린 피톨들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시골집의 너무 뜨거운 황토방, 불편하기 짝이 없는 화장실, 조금의 비에도 질척거리는 마당... 이런 것이 정말 견디기 어렵다. 더군다나 나보다 훨씬 불편함을 싫어하는 아내 덕분에 나는 인도나 라다크를 갈 일은 없을 듯 하다.

지난 여름 유럽에 갔을 때도 열흘 동안을 호텔방에 머물며 따끈한 샤워기를 마음껏 썼고, 푹신한 침대의 쾌적함도 실컷 누렸다. 겨울 일본 여행때도 이십오층 부페식 식당에서 도쿄 도청을 바라보며 포근한 날씨에도 펄펄 날리는 눈송이들을 즐거이 보았고...

라다크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여사가 쓴 <오래된 미래>에서 잘 소개되어 있다. 라다크를 이해하기엔 그 책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라다크도 관광객이 상당하단다. 그런데, 실상 라다키들은 라다크에 자동차가 드물던 80년대, 호지 여사가 기사까지 고용한 고급 자가용 지프를 몰고 라다크 골짜기를 누빌 때, 현지 라다키로서 그때까지 느껴보지 못한 상대적 빈곤감과 문화적 열등감이 대단했다고 한다. 이런 글을 읽을 때, 역시 이야기란 시각에 따라 이렇게도 달라지는구나 하고 느낀다.

줄레!하고 낯선 사람에게도 잘 웃으며 인사 건네는 라다키들. 소남이란 남자 이름과 앙모라는 여자 이름이 숱하게 많다는 라다키들. 그들은 잘 씻지 않는 예전의 우리를 닮았고, 잘 웃던 예전의 우리와 비슷하다.

"그럼요. 행복해요, 꼭 하늘을 나는 새처럼..." 라는 말을 할 줄 아는 라다크 소녀들의 마음 속에 우리와 같은 지향을 하면서도 우리와 다른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제가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화장실에서 어떻게 뒤를 닦는지 모를 정도로 청결과 상관없는 삶을 통해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을 곁에서 보고, 같이 살다 온 최화백의 삶은 충분히 부러웠다. 그러나, 그가 훌쩍 떠나 1년을 체류하다 온 그 세계의 기록은, 남기고 싶다는 그의 열망에 비한다면 별로 읽을 거리는 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의 그림들도 순간순간 기록된 것이 아닌, 작품 수준의 그것이어서 그의 감회들과 어울려 한 덩어리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그가 찍었던 사진들도 같이 수록했더라면 이해에도 도움이 더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사람들, 책을 내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 이 책 한권을 찍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몸을 바쳐야 하는데... 특히 그림 관련 책들은 두툼한 재질의 종이를 써서 그림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자연을 죽여버려야 하는지... 이 책은 수필집으로도 별로고, 도록으로써도 훌륭하지 않다. 차라리 그의 그림을 크게 싣고, 간단간단히 설명들을 덧붙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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