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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2월
평점 :
80년대는 그야말로 소설의 연대였다. 민중 문학을 표방하면서 소설이 홍수를 이루었고, 각종 문학상 수상작들 중에서도 수작이 쏟아져 읽을 거리가 상당히 많았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정점으로 소설의 시대가 온 듯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90년대에는 잔치가 끝났다. 그 빈자리를 메우던 작가들이 몇몇 있었는데, 그중 독특한 문체와 특유의 상징적 분위기를 가진 작가가 바로 신경숙이다.
그의 소설은 우선 적당하게 몽롱하다. 현실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쩌면 세상 자체가 인간들이 적응하는 것을 거부하는 몽롱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나 질투의 대상이 될 정도로 잘난 인물이 없다. 그저 기계적인 사회의 틈바구니에서 한두가지 정도 상처를 안고 사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난 그의 소설이 친근하다. '그' 또는 '그녀'는 '나'이기도 하고 '너'이기도 하다가, '아무'도 아니기도 하다. 인칭, 인격의 몽롱함은 나의 자아를 주눅들게 하지 않는다.
<기차~>에서는 예지력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리고 기억 상실에 시달리는 주인공 하진이 사진 한 장에 매달려 과거를 추적하는 스토리이다. 스토리랄 것도 없다. 헤어졌던 친구들의 결합, 헤어졌던 주인공의 결합, 자살 미수 조카의 의욕, 전화 속의 그녀의 동의...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기억들이 기워지는 동시에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인간 관계들이 통속적인 드라마의 마지막회처럼 다들 모여든다. 이 부분은 좀 산만하고 너무 뻔한 구성이라 좀 불만스럽긴 하다.
미스테리와 자살, 그리고 환상적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결말을 보여주기까지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간혹 구로구의 공장들이라든지 그런 것들로 유추하게 만들긴 하지만, 추리소설처럼 깜짝놀랄만한 기억이 아니라, 확인하고 나서도 그저 그런... 인간 본연의 <결핍>에 대해서 확인하게 하는 신경숙의 문체는 이 소설에서 상당히 변화된 듯 하다.
내가 읽었던 이전의 소설 몇 편과 비교하면,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한 결과물인듯하고, 더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삶과 추억의 거리감을 안개라도 자욱하게 낀 듯 희미하고 몽롱하게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마음 편하게 만들어주는 그의 글은 내 취향과 잘 어울린다. 속물적인 인간들이 등장하고, 애매한 정체성을 상실한 인물은 늘 피곤한 소설을 난 싫어한다. 적당히 몽롱하고 적당히 낙관적이며, 적당히 낭만적인 소설이 난 좋다. 소설은 어차피 픽션이라면, 굳이 또렷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본래 어느 구석이 이렇게 텅 비어있고, 평생을 그 빈곳에 대한 결핍을 지니고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일까?"라고 뇌까리는 그의 글에는 늘 <결핍>과 결핍으로 인한 <흉터>가 남아 있어 가끔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 그 결핍과 결핍의 상처에서 그의 글이 나오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서른 다섯, 몸 속의 습기가 메말라 가는 나이. 만남도 이별도 새롭지 않고 처음 만나는 사람조차 언젠가 한 번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나이." 어떻게 이런 걸 느끼고 글로 적을 수 있을까. 나도 지금 생각해 보면, 낯을 덜 가리기 시작한 것이 바로 저 나이였던 것 같다. 발도르프 이야기에서 처럼, 사람이 태어나서 7년마다 새 몸을 얻는다면, 나는 지금 여섯번 째 몸은 얻어 살고 있는 거다. 그 분기점이었던 서른 다섯을 지나면서 이별에 연연해하지 않고, 만남에 비중을 두지 않는 퍼석한 삶을 살기 시작했던 거다. 내 삶이 퍼석했던 것은 슬슬 몸 속의 습기가 메말라 갔기 때문이었던가... 그래서 김현승 시인은 노래했나보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