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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을 읽는 월요일
조용헌 지음, 백종하 사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화장실에서 읽기 좋을 만큼,
한 토막의 호흡이 무척 짧다.
그런 글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사람을 만나기 좋고, 새 사람을 만나기 꺼리듯,
호흡이 짧은 글들은 새로이 준비할 일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동양학이라는 공통점에서 어우러지는
이 글의 소재들은 우리에게 낯선 것이 거의 없다.
참 익숙한 말들이고, 익숙한 사물과 사람들로 빼곡하다.
다 읽지도 않았고,
다 읽을 것 같지도 않고,
뭐 읽었더래도 그 내용을 잊어버리고 마는 책꽂이 같다고나 할까...
누군가가 좋대서 불현듯 뽑아본 책장의 책이
마치 처음 보는 이야기처럼 낯설 때...
그래도,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기꺼이 머리나쁨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네 개의 챕터로 나눠진다.
독만권서 행만리로 격물치지 조화무궁...
만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여행하고
사물을 보고 이치에 이르고
대자연의 이치는 끝이 없다는 이야기는 참 유구한 삶의 심연으로 독자를 이끈다.
마음은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몸입니다
몸은 무엇입니까
보이는 마음입니다(31)
뱅뱅도는 순환 논법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어 보이는 말이지만,
그 속에서 이야기의 주제를 잡아낸다면, 멋진 표현이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인데,
그 마음은 몸으로 인하여 보이게 된다.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이라면 환한 낯과 생기 발랄한 몸으로 비칠 것이고,
어둡고 침침한 시린 마음이라면 파리하고 지친 몸으로 드러날 것이다.
학교 다닐 때 하는 공부보다
40세 이후에 하는 공부가 자득지미를 느끼는 진짜 공부(41)
이런 대목을 만나면 반갑다.
나이 들었단 증거다. ㅎㅎ
그는 곳곳에서 나이가 드니,
달이 반갑고
밤의 빗소리가 반갑고,
산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심장이 덜 뜨거워지는 나이가 되면, 외부로 눈이 돌아간다고 했던가.
그래서 격물치지...
사물을 바라보며 지에 이르는 시기가 마흔 넘어 공부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거라고 맞장구를 치며 읽는다.
격물치지는... 관찰력이라고 그도 그랬다.
이 책을 탐독하지 못하고,
사물로 바라보고 앉았던 나는 '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그만, 그가 잘못 부려 쓴 한자어 하나에 속이 상하고 말았다.
그건, 그가 이 책의 주제라고 드러낼 수도 있는 '조화'라는 한자다.
조화를 調和 라고 쓰면... 서로 잘 어울림, 하모니...의 의미에 불과하다.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신통하게 된 일, 그런 일을 꾸미는 재간을 일컫는, 조홧속을 모르겠다...
신통한 조화다...라고 할 때는,
造化를 써야 옳다.
이 책에 드러나는 '동양학'의 모든 기운생동이,
결국 변화에 그 틀을 터잡고 있으니 말이다.
변화가 움직여가는,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
운명론적인 '命' 조차도 움직이는 것(運)으로 파악했던 동양학의 재미를 전하려는 책에서,
그만, 키포인트를 놓치고 말아,
배가 가려는 방향을 잃고 뱅글뱅글 제자리를 도는 것만 같아... 그 한자어 하나에 못내 아쉬운 마음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