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닦기
무산본각 / 정신세계사 / 1999년 2월
평점 :
품절


한 달을 끌다가 이제 개학이 되니 마무리를 짓느라 겨우 읽어낸 책이다. 불교의 이론적 바탕이 전혀 없는 나에게 조금의 불교적 지식은 도움이 되었지만, 내 마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밭이 워낙 좁다 보니 공부가 별로 되지 않았다. 제목은 마음닦기이지만, 실제로는 불교의 원리를 이론에 입각해서 체계적으로 적으려 한 책이다.

물론 이론보다는 실제 수행에 많이 치중한 냄새가 나기는 한다. 무겁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는지 중간중간 게송을 싣기도 했다. 그러나... 쉽게 읽히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씩 빛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던가 싶다.

한 꼭지라도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많은 지식들은 곧 구름처럼 흩어져 버린다. 틱낫한 스님의 책들이 좋은 점은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지식들에서 유추된 숱한 비유와 이야기들을 통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이론의 바탕을 섭렵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 책은 거기에 성공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불교의 숱한 개념들을 다루고 있지만, 교과서 들고 수험서 외우듯 할 수 없는 것이 불교공부라 믿고 허투루 공부한 탓에 몇 가지 개념 조차도 머릿속에 정리되지 못했다. 지관쌍수(止觀雙修), 정혜병수(定慧竝修)의 방법들을 설명할 때 위빠사나 명상법의 깨어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같은 구절을 수십번 반복하는 것은 귀로 들을 수는 있지만, 눈으로 보기에는 오히려 자세하지 못하고 해가 되었다.

CD를 차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 마음을 집중하고 '지금 나는 운전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지금 나는 출발한다. 차가 빨리 가면 나도 빨리가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운전할 수 있게 되는데, 물론 깨어 있어야 이런 생각이 든다. 조금만 넋을 놓고 앞차를 보고 있으면, 차는 너무 빨리 가고 있다. 참으로 나쁜 버릇인데, 깨어 있어야 고칠 수 있다.

생각을 멈추고, 나를 알아차려 주시하라는 가르침은 책에는 쉽게 쉽게 적혀 있지만, 한 순간도 쉽지 않은 것임을 저자부터 잘 알고 있으리라. 나의 정신이 흐른다는 것을 깨닫고 알아차리기란...

<몸의 동작, 언어 행위, 의지 작용>을 모두 주시하고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지만, 의지를 갖고 바로 볼 만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한다. 나도 모르게 습관에 밴 몸동작, 표정과 말투, 비꼬거나 남을 깎아내리는 표현들, 그리고 비루하고 無明에 가까운 나의 생각과 의지들... 이것들을 주시하고 고쳐나가지 않는다면, 이미 삶을 반이나 살아버린 나로서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남을 탓하지 말고 깨어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일의 因은 나로하여 생김이므로...

이 책에는 자신을 주시하는 의식을 문지기에 비유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 왕이 다스리고 있는 변경의 도시가 있다. 그 왕국으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대단히 영리하고 경험 많은 신중한 문지기가 있다. 그는 왕국의 백성을 보호하고 적들을 막아내기 위하여 아는 사람은 통과시키고 수상한 사람은 돌려 보낸다. 여기서 말하는 문지기는 빈틈없는 주시력과 마음챙김의 능력을 갖춘 성스러움 수행자에 비유한 것이다. 그는 오래 전에 행하고 말한 언행들도 기억하고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훌륭한 문지기와 같이 마음 챙김이 잘 된 성스러운 수행자는 악한 것은 버리고 선한 것을 가꾸어 나간다. 그는 항상 청정심을 유지해 나간다.>는 이야기. 내 마음의 문지기가 얼마나 태만한지... 늘 비판적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내 비유로써 말할지니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하는 구절이 숱하게 등장한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숱한 비유로써 말하신 선각자들의 이야기를 귀가 있는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선문답의 경우 뜻을 풀려고 하다가는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만다. 이 책에서 엄청 반복하듯이 <모든 일의 시작과 중간, 끝을 역력명명하게 알아차리고 밀밀면면하고 성성적적하게 주시하면 몸과 마음이 평온해 지고 고요해 진다>고 하지만, 어려운 비유들이 별 설명도 없이 좌르륵----- 펼쳐질 때면 몸과 마음이 평온해 지기는 커녕, 지식의 미망에 빠져 허우적대기 십상이다. 숭산 큰스님의 '벗어버려라'는 이야기처럼, 나를 벗어버리고, 나를 놓아버려야 하지만, 실상 나는 무엇을 벗을지, 무엇을 놓을지 전혀 모르는 불목하니라는 생각만 환하다.

숭산 대선사께 수녀인 미국인 제자가 독참(수행자가 자기가 가지고 공부하는 공안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제출해 직접 스승의 점검을 받는 것)을 청하고, 발가벗고 들어갔습니다. 수녀 왈, "선사님, 어떻습니까?", "다 벗어 버려라.", ".......?????" 수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발가벗은 그대로 한 바퀴 돌아 보이곤, "저는 다 벗었는데요?", 선사의 일갈 : "놓아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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