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반야심경
송원 / 상아 / 198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틱낫한 스님의 책들을 읽다가, 이십 년 전에 사 두었다가 누렇게 찌들기만 하고 읽지 못했던 반야심경이란 책을 꺼내 들었다. 이십 년 전의 책이라, 맞춤법도 지금과 다르고, 컴퓨터로 편집하는 요즘과는 달리 활자로 식자하던 시대라 틀린 한자도 많고 구절을 빼먹어버린 부분도 있다. 그런 것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진다. 요즘 책들은 '복자'가 없지 않은가. 잘못해서 거꾸로 박힌 글자나 누운 글자를 바라볼 때의 인간미란... 나만 취향이 이상한 건지는 모르겠다.

맞춤법이 조금 바뀌고(바뀌었댔자, '읍니다' 가 '-습니다'로 바뀌고 모음조화가 지켜지던 '고마와'가 '고마워'로 바뀐 정도 뿐이다.) 종이가 누렇게 찌들었을 뿐, 반야심경의 풀이는 상세하고 충분했다.

물론 한 권의 책으로 반야심경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오직 모를 뿐...'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간 틱낫한 스님의 책들을 읽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숱한 예시들이 불교의 정수를 이해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알고 이해하는 것과 진실로 깨닫는 것 사이에는 빛이 없는 검은 어둠 만큼의 거리가 있다. 그나마 이제 나는 모른다는 것을, 모르면서 아는 체 했던 지난 날들이 부끄러웠음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이십 년 전 대학 1학년 생이 이 책을 삼분의 일 읽다가 말았던 것을 지금의 나는 이해한다. 그 때,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알았던 '무명'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던가를... 그리고, 지금은 그 때보다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도 무명의 바다에서 헤매이고 있음을... 없는 것을 부여잡고 날마다 집착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사는 것임을 아는 것만으로도 이젠 행복하다.

새 책이 아니어도 수천 년 전의 부처님이 왜 깨인 인간이었던지를 조금 이해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나를 잊고 살던 내 지나온 반생을 돌아보며 꼭 불교가 아니라도 나를 깨우는 나머지 반생을 살고 싶은 요즘, 나이가 들면 들 수록 고마운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고, 질긴 인연을 엮게 되고, 고마운 책들을 고를 수 있게 된다.

반야심경을 초등학생용 노트에 한 번 적어 보고는 조용히 읽어보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와서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빠,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 같아요.'라고 한다. 그것이 무상등주로서의 <반야심경>의 가치인가 보다. 의미를 알지 못해도 마음이 편안해 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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