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통신 2013-2호                                                                                                             부산 0 0 고 2학년 1반

 

 

3등은 괜찮지만, 삼류는 곤란해

 

 

안녕, 우리반 신사, 숙녀들... 너희 만난 지 이제 일주일 지났다.

근데 참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지?

시간이란 게 그래. 낯설고 서먹한 처음엔 빨리 흐르지 않아. 이러다가 조금만 지나봐.

이제 2주 뒤엔 우린 베이징에 있을 거고~ 그리고 한 달 뒤면 중간고사를 칠 거야. 어어~~하는 사이에 내년 2월이 오게 될 거야.

선생님의 편지는 늘 잔소리란다. 선생님이란 직업이 그래. 큰 걸로 너희에게 뭘 가르쳐주기보다는, 아주 작고 자잘한 것들에 대하여 끝없이 잔소리하는 그런 일이거든.

 

 

내가 요즘 다리가 좀 불편해서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고 퇴근을 빨리해서 아직 너희 얼굴도 다 모르겠다. ^^ 뭐, 차차 이름도 얼굴도 알아 가겠지만~

이번 주부터는 8,9교시 보충학습도 시작되니까, 얼굴 볼 시간이 더 없겠구나.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너희 보고있으면 ‘참 바쁘게 산다’ 싶은 생각이 들어. 한국에서 태어난 죄로, 수능 준비에, 이런저런 활동에 바삐 움직이면서도 늘 잘도 웃는 걸 보면 대견하기도 하다. 이번 주 수요일에 시험 마치고 나면, 간단하게 상담을 할까 해. 일단은 너희랑 개별적으로 얼굴을 봐야 좀 익숙해 질 거고, 너희 진로 이야기도 좀 들어보려고.

너희가 준비할 건, 어떤 레벨의 대학을 원하는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진학을 위해서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이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지, 선생님과 이야기나눌 것을 조금은 준비해 보기 바란다.

 

수업 시간에 ‘백석’의 ‘모닥불’에서 ‘평등’을 이야기한 적 있지?

 

누구나 차이가 나게 마련이라구. 그치만, 인간의 가치에 비한다면, 그 차이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이야. 그 이야기의 연장선 상에서, 3등은 괜찮지만 3류는 곤란하다는 말이 있어. 우리 반에도 1등부터 33등까지 줄을 세우면, 당연히 꼴찌도 있을 거잖아. 그런데 말이야. 등수는 꼴찌일 수 있지만, 명심할 건, 그 사람이 꼴찌는 아니란 거지. 예를 들면 박지성이 33등이었다고 무시할 수 있겠어? 장동건이 33등이었다고 바보라고 놀리겠냐구~ ^^

 

너희가 등급을 받고, 등수를 받는 데 따라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침몰하기도 할 거야. 그렇지만, 33등인 것보다 더 좌절스러운 것은, 3류가 아닐까 해.

 

어떤 학생이 삼류 학생일까? 어떤 인간이 삼류 인간일까?

요즘 쓰는 말(시쳇말)로 ‘찌질하다’는 말이 ‘삼류’와 가깝지 싶어.

너희도 찌질한 거 싫어하잖아. 그치?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학급의 약한 친구를 왕따시키고, 빵셔틀, 가방셔틀, 급식셔틀로 부려먹는 녀석이 있다면, 참 찌질한 인간이겠지? 우리반엔 그런 친구들은 없겠지만, 뭐, 예를 들자면, 계획은 늘 웅대하고 휘황찬란하게 세우면서 실천에는 게으른 친구가 있다면, 역시 찌질이의 부류에 가까이 가지 않을까? 그런 날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날들이 계속된다면 말야.

 

그리고 참을성(인내심 忍耐心)이 많은 것과 미련하고 소심한 것은 다른데 말야. 잠과의 싸움, 휴식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고 공부를 하는 것은 참을성일 수도 있지만, 몸에 병이 날 정도로 자신을 돌보지 않다가 앓아 눕는 것은 미련한 일이란다. 일종의 찌질이지. 자기 몸은 자기가 늘 잘 관리해야 해. 특히 너희 청소년기에는 말야. 몸에서 온갖 종류의 호르몬이 마구 분출돼서 대뇌의 이런저런 부분이 혼란을 겪기도 해. 정신 건강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단다. 담임 선생님은 말야. 너희를 통제하고 혼내는 사람이 아냐. 너희의 진학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도 아니란다. 너희보다 세상을 조금 더 살아본 사람이라서, 너희가 지치거나 에너지가 떨어졌을 때, 마치 먼 길을 달리는 자동차가 정기적으로 ‘주유소’에서 가스도 넣고 휴식도 취하듯이, 힘든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며 쉬어갈 수 있는 기관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혼자서 찌질하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격하하는 마음(자격지심 自激之心)을 너무 지속적으로 가지고 산다면 뉴러서지컬-사이카이어트리 병원에 상담하러 가야할지도 몰라. ^^

 

 

요즘 여러 선생님들이 올해 문과반이 굉장히 긍정적이고 밝아서 좋대. 수업이 제일 잘 되는 반이라고 칭찬을 들은 적이 여러 번이야. 그건 학급의 특성이지만 너희 하나하나가 뿜어낸 아우라가 잘 혼합되어 느껴지는 느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선생님이 바라는 일류 학생, 일류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일류 학생이라면, 교실에서 잘 웃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좋은 친구가 되면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 그랬잖아. 좋은 친구와 가는 길이 일류가 되는 길일 거야.

 

그리고 일류 학생이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삐뚤어진 쓰레기통을 가지런히 해놓을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 지난번에 선생님이 칠판 청소를 했더니 주번이긴 했지만 민지가 도와줘서 좋았어. 그런 게 일류야. 가희가 입원했다고 병문안을 간 또다른 민지와 다연이도 일류 학생이고. 청소 시간이면 으레 자기 구역에 가서 깨끗이 돌아보는 친구들은 모두 일류란다. 근데, 일류가 되려면 말야, 늘 깨어 있어야 해. 그치? 사람은 금세 게을러지는 동물이라서 말이지.

 

 

너희 진로에 대해서는 말야. 내가 해줄 말은 이것밖에 없어. 너무 조바심내지 말라는 것. 大器晩成 이라잖아. 훌륭한 그릇일수록 오래 걸려 만들어지는 법이래. 빨리 법관이 되는 것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법관이 되는 게 필요하잖아.

 

이제 고2인데, 뭔가 해놓은 건 없고, 이래가지고 대학 어찌 갈까 싶지?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다 좋은 데 보내줄게. ^^ 있잖아. 세상에 뭐든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이란 없단다. 준비가 덜된 채로 어른이 되고, 나중엔 엄마, 아빠도 되고, 직장인도 되는 거야. 9점 안에서만 보고 너무 조바심내면, 자칫하면 아프거나 찌질이가 된다구~

 

 

우리 교실에선 말야.

웃음 소리가 더 많이 났음 좋겠어.

공부도 더 잘 되는 2학년 1반이 되면 좋겠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서로 쓰다듬어 줄 수 있는 일류 학생들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일등부터 33등까지가 모두 우리반이고, 일류일 수 있는 길을 너희가 찾아 갈 수 있길…

 

 

오늘 숙제, 운동장에 활짝 흐드러지게 핀 목련을 하늘과 함께 5초 이상 바라보기

 

담임선생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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