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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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1960년대, 식민지를 거처 전쟁을 치른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고,

가난한 초등학교를 거쳐,

경쟁을 지고의 가치로 아는 중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 진학했다.

80년대 뜨거운 시대를 거쳐 교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고,

27세에 25세였던 아내와 결혼하여 다음 해 아이를 낳아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이것은 나의 역사인데,

여기에는 어떤 자유 의지도 개입할 수 없었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순전히 우연이고,

학교를 다닌 것도 별다른 길이 없어 다닌 것일 뿐이다.

직업을 선택할 때도, 고시공부처럼 후원이 필요한 학과엘 지망하지 못했고, 재수도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었으며,

결혼 역시 그 시절에는 그 나이에 다들 하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도, 다른 사람들도 죽지않고 살아 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의지'의 동물이라고 일컫는다.

인간은 자유 의지가 있어, 훌륭하게도 되고, 범죄자도 된다.

그래서 범죄자는 네 의지로 그렇게 한 것이나 사형이야~! 이렇게 처벌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과연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얼마나 허용되는가...

인간이 정말 제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있는가를 다양하게 분석한다.

그 결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비관적이고 회의적이다.

 

그래. 주류 경제학에서는 열심히 일하면 잘 산다. 경제적으로 판단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몇몇 나라의 몇몇 기업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따름이다.

자유 의지 역시, 성공 가도를 달리는 몇몇 사람은 <하면 된다>는 의지의 중요성을 역설할지 모르지만,

세상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유 의지대로 살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서양의 개방된 사회에 비하여 한국의 여성들은 가정에서 힘들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슬람 사회 몇몇 근본주의자들이 지배한 세상에서 여성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기도 하는 바,

자유 의지라는 것 역시, 만병통치로 두루뭉술 쓸 개념이 아닌 것이다.

시대와 공간에 따라 그 효용과 개념 자체가 달라지는 개념이다.

 

세상의 그 어떤 읻 자신이 물려받은 유전자나 양육된 방식에 책임이 없다.

실제로 도덕성 자체에 운이 얼마나 크게 개입하는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비도덕적인 것 같다.(68)

 

이 책이 밝히려는 바는 명백하다.

인간을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 규정하고,

그래서 인간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근거가 되도록 하는 일은 부조리하다는 것이다.

그래.

한 아이가 공부를 못하고 사고를 저지르는 청소년이 되어있기 까지는,

수많은 불운들이 개입하고 누적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그 아이에게 도덕적으로 접근하는 길일 것 같다.

 

보복에 대한 욕망은 모든 이가 자기 사고와 행동의 자유로운 주체라는 관념으로부터 발생하여,

인지적이며 감정적인 환상에 의지하며,

급기야 도덕적인 환상을 영구화한다.(73)

 

그렇지만, 우리는 뭔가 부정적인 결과를 낳은 사람에게 '처벌'을 당연시한다.

자기 행동의 자유로운 주체는 자신이므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말자는 의견이 과격할 수 있어 보이지만,

이런 의견이 존중받는 세상은 그래도 좋은 세상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전쟁으로 버틸 수 있는 전쟁산업국가이지만,

또 이렇게 자유롭게 의견 개진이 가능한 나라여서 그 나라의 저력이 두려운 나라다.

 

주류 경제학, 주류 사회학에서 굳이 애써 외면하려 하는 가난, 불안, 질병... 이런 현상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새삼 안목을 키워주는 얇은 책이다.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한번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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