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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ㅣ 창비시선 357
함민복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평점 :
함민복 시의 힘은,
솔직함에서 우러나는 뜨거운 느꺼움에 있다.
그 마음을 불러오는 이의 착한 심성이 시에서 그대로 묻어나,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착하게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것이 그이의 시가 가진 힘이다.
지난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 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 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가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 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 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눈물은 왜 짠가)
이렇게, '눈물은 왜 짠가'라는 짠한 질문 한 마디로,
삶의 땀방울과, 눈물의 섞여드는 그 지점을 은근히 짚어주는 게 시인의 몫이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긍정적인 밥)
사노라면,
참 세상 험하단 걸 날마다 투덜거리게 된다.
그런데... 이런 착한 사람이 있다니...
박한 돈을 손에 쥐고도... 그 돈의 가치를 곱씹어보는 다사로운 마음이 있다니...
그런 데 시를 읽는 맛이 있다.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음을 배우는 데, 시 읽는 멋이 있다.
그런데...
이 시집을 읽고서는 좀... 그렇다.
매번,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하는 기원이 먹혀들 순 없는 노릇인지,
이번 시집은 좀 맹숭맹숭한 느낌을 받는다.
함민복 시집에서 읽었던 그런 힘보다는,
시인이 의미를 발견하려 눈을 깊이 뜨고 바라보았던 사물들에게서 획득한 언어들,
또 자연 속의 향그러움을 놓치기 싫다는 듯,
그렇지만 피폐해져만 가는 농촌을 사뭇 아쉬운 눈길로 바라보는 시편들,
그리고... 아름다운 시어들만으로는 도저히 잡아낼 수 없는...
잡것들의 나쁜 짓을 바라보는 시인의 쓰라린 속이 오롯이 드러나고 있다.
이 시집으로 시인을 평가하기보다는,
어디론가 머언 길을 건너가고 있는 도중이란 느낌.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 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흔들린다, 부분)
도중에 섰으니, 시인은 계속 흔들림을 감지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흔들림을 감지하고 계속 흔들림을 버티는 이유는,
흔들리지 않는 무엇을 어기 위함이란다.
이런 아이러니를 곱씹을 수 있게 해주는 일이 시인의 업이다.
그래.
자신도 흔들리면서,
흔들림의 가치는... 흔들리지 않기 위함이라고,
억지를 부려보는 것이다.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
당신을 읽어나갑니다
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형
실제 던 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 (양팔저울, 부분)
이 시집엔 이런 시들이 많다.
관조...의 눈길.
무언가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얻어내는 삶의 비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중심점이 있나보다.
마치 양팔저울이 균형을 맞추고 있듯,
보이지 않을만치 가볍게 흔들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
상대를 읽어나가는 일은,
상대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나를 덜거나 보태어 균형을 이루려 애씀이다.
또한 상대의 무게를 통해 내 무게를 읽을 수 있기에,
간당간당 흔들리는 양팔저울은 흔들림이 곧 균형으로 가는 길이리라.
서로 집중하여 얻어내는 평형.
사람과 사람 사이엔,
덜어낼 짐이 없는 것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가 다사로워지면, 아주 가벼이 짐을 덜어내게 되느...
그런 '사이'를 짚어준다.
거기
우리
수평의 깊이 (양팔저울, 부분)
같은 시에서,
'수평'과 '깊이'란 두 단어를 눈여겨 봤더랬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는,
<거기>에는... <우리> 사이에는,
평평한 균형을 맞추는... 수평처럼 평등한 관계로 보이지만,
그 보이지 않는 균형점에서 느낄 수 있는 <무게>가 지향하는 것은,
<우리>의 <깊이>란 것.
이 말을 다른 시에서 다시 만난다.
전철 안에 의사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두 귀에 청진기를 끼고 있었다
가운을 입지 않은 젊은 의사들은
손가락 두 개로 스마트하게
전파 그물을 기우며
세상을 진찰 진단하고 있었다
수평의 깊이를 넓히고 있었다 (서울 지하철에서 놀라다)
지하철을 타 보면,
10중89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많은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에 열중해 있다.
그걸 '수평의 깊이'란 낱말로 찾아낸다.
물론 커피숍, 버스... 같은 곳에서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켜고 들고 뭔가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을 지하철처럼 나란히 옆으로 앉히는 공간은 드문 것.
스마트폰을 누르면서 추구하는 것은 도대체 뭘까?
누군가와 소통을 이루고 싶다는 외침과도 같을까?
수평,과 깊이, 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거기 다시 '넓히고'라는 말까지 가세한다.
지하철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은 평등해 보인다.
이게 '수평'의 의미라면,
그들이 추구하는 소통을 향한 간절한 바람을 '깊이' 정도로 읽을 수 있을까?
수평의 깊이는 점점 넓어져만 간다.
놀라운 일이다.
사람들은 외롭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스마트폰 속으로 침잠하지만,
오히려, 바로 앞에 앉은 사람조차 마주보지 않고, 엉뚱한 데서 '깊이'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시집에서 내 눈길을 끈 시들은 '달'과 관련된 시들이다.
나이가 들면 해보다 달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던가...
너도 궤도를 벗어나
자유롭게 흐르고 싶은 것이냐
구름빛 낮달 (낮달, 전문)
퇴근하기도 전인데,
하늘에 구름인 듯, 낮달이 비치는 날이 있다.
달이라면 의당 까만 밤하늘에 새초롬하게 떠오르는 것이라고,
또는 둥두렷이 검은 세상을 비춰주는 환한 존재라고 여기기 쉬우나,
가끔은 달조차 궤도를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
아니다, 화자가 딱, 그런 맘이렷다.
보름달 보면 맘 금세 둥그러지고
그믐달에 상담하면 움푹 비워진다
달은
마음의 숫돌
모난 맘
환하고 서럽게 다스려주는
달
그림자 내가 만난
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 (달, 전문)
'서정'은 시에서 이렇게 툭 불거질 어휘가 아닌데.. ^^
그가 62년 호랑이띠라면... 이제 달에 점점 몰입할 나이가 된 건가?
사과를 파 먹으면 '파인 애플'이 된다는 농담도 있더라면,
손톱달이 조금씩 차올라 만월이 되고,
만월은 조금씩 덜어내어 다시 그믐이 되는,
그렇게 차고 이지러짐을 바라보노라면, 세월 참 금세다.
숫돌은,
모난 것을 더 둥글려주기도 하지만,
둔해진 것을 더 벼려주기도 하는 법.
모난 맘이든, 못난 맘이든,
환한 날은 환한 대로,
서런 날은 서러운 대로,
달에 마음을 실려 보내고 싶은 화자는,
역시,
나이가 들어가나부다.
맞다.
달,
너는 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