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학의 범우문고 145
박제가 지음, 김승일 옮김 / 범우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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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學議, 박제가


다양한 정보의 시대라는 현대를 사는 우리와 달리, 오로지 자기 눈으로 보고 듣는 것만이 경험세계의 전부였던 조선 시대. 이 넓은 대륙의 한 끄트머리 조선에서 중국의 선진 문물을 부러워하던 이들이 있었다. 이름하여 北學派라고 하던 실학자들이 그들이다.


우리 역사에 실학이란 학풍은 없었다. 일본의 實學에 기대어 우리의 실사구시하는 학풍을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그 중 가장 격했던 부류가 북학파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시대의 글들을 보면, 크게 문물의 충격과 사대주의가 어우러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가난과 좁음을 한탄하면서, 현실이 된 부정적인 과거제도를 비판하면서, 그들은 선진 문물의 도입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박제가의 젊은 시절 비바람과도 같던 꿈도 정조 사후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그의 생각들은 죽음으로 묻혀버린다.


발전의 기회를 놓친 조선. 내란과도 같던 순헌철종의 삼대 육십년간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풍전 등화로 만들고 말았다. 갑작스런 정조의 죽음이 조선의 운명에 된서리를 내린 셈이다.


박제가의 글을 읽어 보면, 어찌 그리 상세히도 묘사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든다. 그 당시의 분석이야 그렇다 쳐도, 중국 문문의 묘사에 대해서는 부러움과 <벤치 마킹> 정신이 불붙어 그랬겠지만, 조선을 발전시키자면 이 길밖에 없다는 <지식인의 책무감>마저 느낄 수 있는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선비들이 중국을 칭송하면, ‘그까짓 오랑캐들의 나라에서 배울 것이 무에 있겠느냐’는 응답을 보일 때, 중국의 수레, 도로, 벽돌 등의 실용성, 그들과의 통상이 필요하며 통역에 힘쏟아야 할 것임을 역설하였고, 농사의 과학화와 군사 제도의 혁신, 외국과의 통상을 위한 조선술의 습득에 힘쏟아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 고전을 읽다 보면, 늘 이 가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정조가 그 해 죽지 않았더라면, 그 할아비 닮아 정조가 30년만 더 치세를 누렸더라면...... 박제가와 정약용이 엔지니어 겸 파이어니어로써 조선의 기틀 잡기에 노력할 기회를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한숨의 가정을 말이다.


이 책은 가볍고 읽기 쉽게 현대어로 잘 풀이한 책이다. 고전을 이렇게 쉽게 풀어서 읽기 좋게 하는 것은 출판사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다. 그런데 6,000원은 좀 비싼 느낌이고, 제본 상태가 나빠, 읽다 보면 낱장이 찢어지게 된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라 풀칠하고 테이프로 발라서 반납해야 하지만, 문고판 책이야말로, 가볍고 작지만,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책이라 생각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책들이 작고 싸지만 튼튼한 것이 많은 것을 보면 허식으로 부풀어진 우리 책들을 보기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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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2-04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책세계는 참 다양하고 넓으시군요! 늘 감탄하며 보고 있습니다..

줄리 2005-02-04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이라... 전 너무 모르는게 많네요. 이렇게라도 배우면 좋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샘 2005-02-0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고등학생들에게 언어영역을 가르치다 보면 별 다양한 책들을 다 읽어야 한답니다. 무식이 바로 들통나는 시간이거든요. 관심은 넓어도 얕은 책읽기라 부끄럽습니다.
dsx님... 박제가의 북학의는 읽어보면 아주 쉬운 책입니다. 수능에도 났던 거고. 제 글로 인해 고전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신다면 그야말로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입니다. 감히 청할 수 없어도 진실로 바란다는 말입니다. 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