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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팜파스
윌리엄 헨리 허드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그린비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윌리엄 헨리 허드슨(1841-1922).
아르헨티나 팜파스에서 소로우와 비슷한 시기에 초원의 기억을 가진 어린이가 있었다. 소로우처럼 의도적으로 자연으로 스며든 삶은 아니었고, 스페인어가 범람하던 그 넓은 팜파스에서 그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 남았다.
그의 글에서는 자연스럽게 새들, 말, 양, 독수리, 타조 들이 숱하게 스치고 지나가고, 깊은 각인을 남긴다. 어린 시절 시멘트 블록 안에 갇혀 자랐지만, 그나마 골목길은 우리 차지였던 초라한 우리의 어린 시절을 회고해 보면, 팜파스에서 유년기를 보낸 저자에게 이 책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소설가이며 박물학자가 된 그의 삶에 유년기처럼 풍부한 글의 원천은 없었으리라.
"사람들이 이 세상과 인생이란 행복하게 살 수 있을만큼 그렇게 즐겁거나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고, 마지막까지 평정을 유지하면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그들이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고, 그들이 그렇게 부족하다고 보는 세상이나 그 속의 어떤 것도 명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풀잎조차도 말이다. 내가 아는 것은 내 자신이 예외적인 경우에 속하며, 내 눈앞에 펼쳐진 세계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세계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흥미롭다는 것뿐이다. 자연을 벗삼으면서 경험했던 기쁨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사라지고 없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행복한 추억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 행복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내 정신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왔고 다시 내 것이 된 그 재능 덕분에, 나는 런던에서 오랫동안 자연과 단절된 채 병들고 비참하게 친구도 없이 지내야 했던 그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도 항상 느낄 수 있었다.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이다."
이처럼 그가 회상하는 어린 시절의 그의 삶의 원천이 되어 주고 있다. Far away and long ago가 이 책의 제목인데, 머나먼 곳, 그 오래전... 뭐, 이 정도의 제목이랄 수 있지만, 파이프 담배를 흐붓이 흔들리우며 어스름진 창가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손녀랄까, 옆자리 앉은 소녀에게 초점없는 눈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노인이 되면 가까운 기억은 사라지고, 먼 기억만 또렷이 남는다는데, 그 그림 속의 아르마딜로와, 뿔이 얽혀 죽어간 사슴들, 가우쵸들의 이야기들이 눈이 시리게 푸르른 팜파스를 배경으로 다시 살아오른다. 소녀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열 번도 더 들었건만, 왠지 할아버지가 서운해 할 것 같아 듣고 있는 팜파스 이야기... 할아버지의 초점없는 눈이 떨리고... 과거는 현재가 된다.
삶의 원천을 잃어버린 아스팔트 위의 아이들을 기르는 우리는, 아이들을 팜파스의 초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연은 영원한 우리의 고향임을 가르치고 잊지 않게 전달할 사명을 띠고 있지 않은가. 지율 스님의 몸짓이 가르치는 바로 그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