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공공의 적2를 보면 설경구가 멋진 검사로 등장한다. 그의 부장검사는 더 멋지고, 지검장은 정말 멋지다. 그래서 이 영화는 허구의 재미를 느끼게 하고, 우리를 통쾌하게 한다.

진짜 검사는 멋지지 않다. 부장검사는 더 멋지지 않고, 지검장 정도 되면 정말 멋지지 않다. 이런 것들을 법조인 내부에서 한 일탈자의 자백으로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반가운 책이다.

한 때 법조인의 꿈을 가졌던 나도 "헌법 전문"을 보는 순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지금으로선 천만 다행이었던 선택이었지만, 고교 시절 헌법을 배우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고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가득한 수업이었던 잊고 있었던 시절을 떠올려 주기도 했다.

열 여덟 시절에 범죄자들과 대면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 무섭게 느껴져서 다른 길을 찾을 때는 이미 문과생이었던 나에겐 별로 갈 길이 많지 않았다. 상대를 가는 것은 내 적성에 정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을 반추해 보게도 한 책.

나와 같은 시절에 대학 생활을 해서 글들이 친숙하다.

공공을 다스리면서 공공을 힘겹게 했던 권력층과 법 사이, 그리고 권력층이 되어가는 법조인들 사이, 그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아웃사이더로서 담담하게 서술하는 김두식 같은 학자(?)를 만나 반가웠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이 법률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솔직하게 말할 때는 십여 년을 같은 직업에 종사하고도 별로 전문성이 없다는 일말의 부끄러움을 가진 내게 동류의식을 갖게도 한다.


<인정한다, 그러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법정신의 차이에서 헌법의 정신을 드러내려고 했다. 헌법의 정신이 가진 숭고함이 현실에서 얼마나 <인정하지만, 그러나> 실현될 수 없는 것인지를 적고 있다. 현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것이 인권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고, 그 사람은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된다고 했지 않은가.

국가의 이름으로 횡포를 부리고, 권력의 이름으로 세상을 컴컴하게 만들던 과거와, 아직도 세상을 덮고 있는 쇠항아리를 찢으려는 한 비주류 법학자의 이야기는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내가, 그리고 세상을 삐딱한 눈으로 바라보는 내가 읽기에 제법 재미있는 책이었다.

다시 공공의 적 이야기로 돌아가면, 우리 현실에선 그런 똥고집을 가진 검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현실임을 이 책은 적고 있다.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일이 많아 찡얼거리던 검사들을 아직도 기억한다면, 그 검사들이 국민을 위해 복종하기를 바라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이기가 십상이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세계 법학의 발전 방향을 볼 때,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옳은 것은 옳다고 밝혀진다는 것이고, 도덕의 최소한이 법이라지만, 그 법은 '정답이 없지만' 아는 만큼 힘이 된다는 가벼운 조언이었다.


지금은 평등의 이름으로 여학생들의 <생리 조퇴, 결석>은 출석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출산 휴가 기간이 늘어났고, 생리 휴가가 정착되었듯이 당연히 인정될 것이지만, 보수의 후퇴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난 우리 반 여학생들에겐, 어디가 아프다고 하지말고 당당하게 생리중이라고 말하라고 한다. 그걸 악용하는 녀석들도 없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아픈 줄 알고 괜히 걱정하거나 잘못한 것도 없는 아이가 변명하는 것보다는 질병도 아니고 장애도 아닌 당연한 현상을 당당하게 말하는 연습을 하라는 의도에서였다. 처음엔 아이들도 쑥스러워하곤 했지만, 금세 익숙해진다. 법이란 이런 것이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금세 적응되는 그런 것.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유익한 책이지만, 또한 그 지난한 몸짓을 적고 있는 책이다. 마치 신동엽이 하늘을 보고 싶어하며 적었던 그 시처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 동 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 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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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1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5-02-01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 책을 님의 글로 처음 접했던 것 같네요. 느긋함을 더 오래 즐기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