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선진 학교시설 견학기 - 그곳에 일본은 있었다. 일본의 교육이 있었다.

2005년 1월 23일 일요일
007작전을 방불케하는 낯모르는 사내 열 명이 김해공항에 모였다. 학교 건축을 전공하는 건축과 교수, 건축사, 에너지 연구소 직원, 교육청 시설과 직원, 교장과 교사들... 학교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비를 들여 해외 출장을 가기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었다. 일본에 관광여행 한 번 간 적 없는 나로선, 4박 5일 동안 가는 데 하루, 오는 데 하루, 3일을 학교 탐방만 한다는 데 내심 좀 불만이었다.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해서 정오 경 도꾜의 나리타 공항에 내렸다. 나리타 공항에서 전세 버스를 타고 신주쿠 워싱턴 호텔에 짐을 풀다. 도꾜의 도심을 지나가는데 희한할 정도로 차가 막히지 않는다. 더군다나 일요일 오후가 아닌가. 다시 모여 아사쿠사의 관음사라는 절을 보았다. 우리의 절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절이었다. 명상이나 선의 도량이라기 보다는 사람들과 친근한 이웃집 같아 보였고, 아게만쥬를 사먹으려고 선 줄은 삼십 분이 가야 여든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앞에 나를 서게 하였다. 튀긴 모찌 10개에 1310엔이니, 하나에 1300원이 넘는 셈이다.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일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유명한 우동집(十和田)으로 갔다. 별로 맛도 없는 1500엔짜리 우동을 먹다. 저녁에 발렌타인 한 병, 열 명이 나눠마시며 안면을 익히고 잠들다.

24일 월요일, 고등학교 견학일
오전, 도꾜都立 츠바사 종합고등학교
원래 츠바사 고교와 공업고교가 있었던 자리에 종합고교를 하나 세웠다. 넉넉한 부지에 400m 트랙을 설치하고(도꾜 유일), 운동장도 푹신하게 마련하였다. 체육관에는 검도실, 유도실, 실내풀(개방형 지붕)을 갖추고 있다.
이 학교의 가장 중요한 설계 컨셉은 선택 교육과정이 가능한 학교를 짓는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2,3학년의 과정에서 과목을 선택하고, 각자 미술·디자인 계열, 생산·테크놀로지계열, 정보·사이언스계열, 국제 커뮤니케이션 계열, 스포츠·건강 계열 중 하나에 맞게 교육과정을 만들어 나간다. 이런 교육과정이 가능한 것은, 유연한 교육청과 학교가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학교가 필요하다면 할 수 있는 열린 마음. 교사는 18학급에 48명(순수 교원), 강사가 15명, 시민강사가 13명, 그 외의 실습조교나 촉탁원, 양호교사, 사서교사가 10명이나 된다. 교사 외에 주간이나 부교장도 2,3명이 있다. 교사의 수급이 유연하지 않고서는 선택 교육과정은 운영될 수 없다. 시설 측면에서도 2,3학년은 자기 교실이 없고, 홈룸이 가능한 홈베이스가 있다. 홈베이스의 조별 문집은 인상적이었다. 수업은 두 시간씩 연강으로 이루어지고 종은 치지 않는다. 종합학교라고는 해도 학생들이 선호하는 계열은 국제 커뮤니케이션 계열이라 전체의 절반 가량 되고, 이과 계열은 아주 적은 인원이었다. 이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야마카미 교장선생님이 전국 공립고등학교 최초의 민간기업 출신 교장이라는 것이다. 닛산 자동차 출신이란 걸로 봐서는 결국 학교는 교육에 대해 몰라도 관심만 있으면 경영이 가능하고, 관리자에게는 경영 마인드가 경험보다 훨씬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기회였다.
우리가 몰랐던 것이 아니고, 요구했으나 교육부에서 들어주지 않았던 것들이 거기는 이뤄지고 있었다. 물론 하루, 이틀만에 이뤄진 것은 아니겠지만, 화가 났다.

오후 도쿄都 게이센(惠泉) 여학원(중, 고교)
우리가 견학하는 여섯 학교 중 유일한 사학(私學)이었다. 모교 출신 교장선생님과 안내 선생님의 자세는 관광 가이드 뺨칠 정도로 성실했다.
이 학교의 건설 컨셉은, 중고 연계 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이 학교에서는 선택중심 교육이 적기 때문에 안정된 공간 배치가 중시된다. 1층의 미디어 센타는 이 학교의 자랑이다. 중고교가 활동할 수 있는 미디어 센터는 도서실(책만 비치하고 학생이 운영하는 수준의)의 개념을 넘어서서 도서관(책과 미디어 자료들을 비치하고, 개가식 도서 센타를 전문 직원이 관리하는 수준의) 수준의 공간이었다. 학생들이 섬세하게 그린 안내도라든지, 천장의 자연 채광 관리 장치가 인상적이었다.
각 층의 과목별 학습 공간은 중고교가 같이 활용하는데, 교과 교실, 교사 연구실, 미디어 스페이스(학습자료 전시 및 자율적 학습 공간), 교과별 자료실 등으로 잘 꾸며져 있었고, 교실마다 색다른 구성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방과 후, 자유롭게 클럽활동을 하며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볼 때, 지금도 우리 아이들을 답답한 교실에서 방학인데도 자습을 할 것을 생각하니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올해부터 대학 입학 정원이 고교 졸업 인원보다 많으며, 곧 닥칠 외국학교 수입을 대비하기 위해 우리도 소모적인 자습과 보충학습, 학원 보내기는 하루 속히 개선되어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학교는 학교 본연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학생을 관리하는 시간은 아침 등교시부터 오후 하교시까지이며, 수업은 학생이 자유롭게 듣든, 교육과정에 따라 듣든, 학생을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이센 여학교 같은 경우 두 학급을 세 클라스로, 세 학급을 네 클라스로 나누어 운영하는 것은 예산의 충분한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 미래가 설계되고 건설되고 있는 현장을 둘러본 하루는, 피곤하기 보다는 우리 교육도 이제 바뀌어야 하고 우리도 가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피를 끓게 했다. 전여옥이 그랬지, 일본 여자들 못생겼고, 일본은 없다고... 일본 여자들 못생겼다지만 상대적인 것이며, 한국 여자들 뜯어고치고 화장발인 거 세상이 다 알고, 일본이 없다지만 한국에 미래 교육은 없다는 걸 세계가 다 안다는 걸 이젠 우리도 깨달아야 한다. 물론 일본의 잘나가는 학교들의 수재들은 그 시간에 학원을 다니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처럼 모든 학생을 밤 12시, 새벽 한두 시까지 묶어두고 고문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사람답게 살 권리를 이제는 지켜줘야 할 때다.

25일 화요일, 중학교 견학일
오전, 도꾜都 마치다市 츠루가와(鶴川) 중학교
쯔루가와 중학교의 건설 컨셉은 정서를 살리는 부채꼴 모양의 학교이며, 열린 공간을 잘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그런데, 학교가 3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 시설의 활용 측면은 부족해 보였다.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이 학교도 교과 교실형이기 때문에 홈베이스가 있다. 실내 풀장은 마찬가지 개방 가능형이다. 물이 따뜻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컴퓨터실의 교사가 뒤에 앉은 것은 쇼킹했다. 컴퓨터 석 대 중 가운데 것은 교사용이다.

오후, 치바縣 우타세(打瀨) 중학교
지은 지 10년을 맞는 우타세 중학교. 치바현, 치바시, 치바 교장선생님의 안내가 재미있었다. 회의실 앞에, 어린이는 모두 사회의 아이【子どもは みんな 社會の子】란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이 학교의 건축 컨셉은 B형 건물에서 교과별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10년이나 되었고, 그 지역의 소학교가 같은 열린 수업을 진행하여 학생들의 호응이 좋다는 분석은 상당히 공감가는 것이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초등부터 학원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들어오는 것. 1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학생들의 활동 작품이었다. 교과교실에 가득한 학생들의 작품은 아이들이 얼마나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그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의 "교과 교실은 상급생들이 무엇을 배우는지 하급생들이 배우는 좋은 공간"이란 한마디는 교과 교실을 정말 운영해 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었다.

26일 수요일, 초등학교 견학일
오전, 도꾜都 무사시노市 센가와(千川) 소학교
추워도 반바지 차림으로 곤죠(根性)를 기르는 일본 아이들. 한 학년이 2학급인 학교에서 한 층에 두 학년이 쓴다. 교실은 열린 공간이다. 쉬는 시간, 아이들은 밖에 비가 오니까 나가지 않고 복도에서 시끄럽게 논다. 선생님들도 터치하지 않는다. 쉬는 시간이니까. 학교 건축에 곡선을 활용한 공간들, 시청각실의 마루바닥에 비친 장인정신... 소학교지만 배울 것이 많았다.

오후, 사이타마縣 오와타(大和田) 소학교
빛과 음을 모토로 한 학교, 전면유리, 자연채광과 간접조명을 통한 빛, 교실분리를 통한 음.
교실을 분리하여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일본 도서실의 특이점은 도서에 전쟁, 환경, 수화 관련 책들이 많다는 것이다.
화장실에 자동 전동 라이트를 설치하고, 소인수 학습, 습숙도 학습을 지향하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다.
수업을 마치고 교정을 달려나가는 모습은 우리와 같지만, 저 아이들을 기다리는 학원 버스가 없어 부러운 오후...

27일 목요일, 귀국
갑자기 앨리스를 만나거나, 메리 포핀스와 환상의 세계를 여행하고 온 듯, 두 시간의 비행은 우리를 일본어의 공간에서 한국어의 공간으로 옮겨 주었다. 방금 환상의 그림 속에서 벗어난 듯, 정신은 멍-- 했지만, 이번에 얻었던 것들.
학교는 학생의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건축해야 한다는 것.
학교는 학생의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
학교는 학생 하나하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것.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라는 것.
학교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교육에 힘써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움직여야 한다는 것...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무거운 몸을 택시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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