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비밀의 방 - 제10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55
조규미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중고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을 청소년이란 이름으로 부른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중 정말 초딩보다 더 유아틱한 부류도 있고, 어른보다 더 어른스런 아이들도 있다.

학교에서 얌전하게 부모님 말 잘 듣고 공부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 속에도,

부스터가 터지는 소리를 내며 폭발하는 하루하루가 힘겹게 살아내지는 것이 청소년기의 삶이다.

 

이 책에는 네 편의 청소년 소설이 등장한다.

조규미의 <음성 메시지가 있습니다>에는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심리가 잘 그려져 있고,

장미의 <열다섯, 비밀의 방>에는 자아분열의 현실에 푹 빠진 여학생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김한아의 <안녕하세요, 그에게 인사했다>에서는 성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키는 남학생의 모습을,

심은경의 <마마보이와 바리스타>에서는 공부와 친구 사이의 삶을 지혜롭게 건너가는 건강한 아이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삶 속에는 역시 가난이 가득하게 배어나지만,

아이들은 가난이 주류인 시대를 살지 않는다.

가난이 주류인 시대를 살던 어른들이 만든 세상은,

가난이 소수인 세상이 되어버렸고, 오히려 가난이 부끄럼과 죄악에 가까이 가도록 방향지어져 버렸다.

사회는 더 열린 쪽으로 바뀌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성적 소수자에 대한 비난의 골은 깊어져만 가는 것도 같다.

 

암튼 이런 것들을 속으로만 삼키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런 소설을 읽는 일은, 자기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의 끈이 될 수도 있겠다.

 

담임은 나를 격려하는 척하고 나에게 관심 있는 척하더니,

 '그래, 화진인 잘 할 거야.'라는 의미없는 말을 하며 이제 그만 가 보라고 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쉽게 내뱉는 것 같아도 겉과 다른 무거운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고,

때로는 완전히 빈껍데기처럼 그저 내뱉고 나면 연기처럼 사라지기도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걸 알고 나자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는 것이 토론 시간에 발표를 하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워졌다.(45)

 

이렇게 형식적인 관계에 힘겨워하던 아이는 마음에 꼭 맞는 친구를 만난다.

 

거울을 보는 나와 거울에 비친 나처럼,

마주 댄 두 개의손바닥처럼,

장갑의 안과 겉어럼 모든 것이 밀접하게 꼭 들어 맞는 관계.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는 사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 사랑하는 것을 투명하게 알 수 있는 사이.

그런 사람을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46)

 

청소년기에는 세상에 자기만 뚝 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기 시작한다.

그만큼 친구가 중요하다.

말하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는 곳이 부모의 품이 더이상 아님을 깨닫는 시기라서 더욱 더...

그렇지만 세상은 청소년기에 사회에 들어가기 전의 통과의례를 부과한다.

특정한 통과의례를 지나지 못하면 실패한 자의 낙인이 찍히기라도 한다는 듯..

 

똑같은 얼굴,

내 얼굴과 똑같은 얼굴을 보는 것.

그 얼굴 뒤에 내 영혼의 판박이 같은 영혼이 스며 있는 것을 보는 것.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참 이상한.(38)

 

그래서 아이들은 이런 친구를 동경한다.

대부분 그 동경은 동경으로 머물 뿐이고,

고독하게 일생을 살아간다.

마침 그 친구를 용케 알아본 사람들은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참 이상한' 친구에게 의지하며 살 수도 있고 말이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세상살이를,

예전의 공동체 생활에 익숙했던 어른들의 시선으로 재단하려 하면 오히려 엇나가기 쉽다.

아이들이 스스로 삶의 재미를 찾아낼 수 있도록,

끈기있게 지켜봐주는 일이 어른들의 몫이리라.

 

친구가 내려준 '만델린'이란 이름의 커피 한 잔으로도

청춘은 참 향그러운 것이기도 하단 것을,

나이든 어른들의 코는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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