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좋은 날 - 그날, 그 詩가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김경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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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오타가 났는데, 거기서 새로운 의미를 읽으며 웃기도 하는데,

행운이나 행복을 치려고 하다가 영타로 쳐지면 '행'자가 god가 되기도 하고,

오늘처럼 '아름다운'을 치려다가 '아픔다운'을 쳐 놓고...

아름다운 거와 아픔다운 거...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혼자 생각하기도 한다.

 

시.

시를 배울 때 잘못 배운 사람은,

시는 작가의 사상과 감정을 압축된 언어로 표현한 문학...이라고 외운다.

 

시.

시는 뭘까?

이창동이 영화로 만든... 시 poetry... 시라고 하는 것...

하여간 묘한 것이다.

 

암튼, 시는 '자기만의 고백'에 가까운 언어 행위다.

그래서 시를 읽고 '주인공의 처지, 환경, 상황'을 명백하게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여서 소설을 읽고 나면, 인물, 사건, 배경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수 있음과 다르다 하겠다.

 

그래서 시 감상에 도움을 주는 일로,

이런저런 경험을 했을 때, 이런 시가 감각적으로 '격하게' 다가서지 않겠니?

이렇게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기도 한다.

 

이 책의 작가는 국어 교사였으므로... 동일여고란 곳이 워낙 교사를 우습게 잘라내고 했던 재단이라...

아이들에게 시를 다가서게 하는 방법을 나름 고민했고,

그래서 삶에서 절절한 느낌을 짜릿~ 하게 표현한 시들을 가려 뽑으려 노력한 표가 완연하다.

 

내가 아들녀석 고3때 읽히려고 열심히 골랐던 시들과 많은 부분 겹치는 부분도 그래서 반갑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라고 뻗대는 구절이 있다.

삶은 짜여진 구도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어서,

당황스럽고 곤란한 순간부터,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난감하거나 앞이 캄캄해지는 일까지 불행해질 순간들로 점철되기도 하는 것인데,

그때, 알약 한 알로 그 순간을 잊는 것이 행복은 아닌 것이다.

 

시를 읽는 일은, 위로받는 일이다.

아~ 세상에 나만 이렇게 팍팍하게 가슴 쥐어 뜯으며 사는 건 아니구나~

내 이 미치겠는 마음을~ 이렇게 시로 써낸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내가 겪은 이 미치겠는 일이, 유일하게 내게만 일어난 불행은 아닌가부다...

이런 일 말이다.

 

진정한 위로는, 우산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이란 표현처럼...

예를 들면,

 

정말 마음 깊이 사랑했던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랑 함께하는 순간은 모든 순간이 완벽했다.

완벽하게 행복했다.

이제 세상은 완벽하게 행복하고 화사한 빛으로만 넘실댈 것 같았다.

그런데... 그가, 가버렸다.

 

이런 상황이라면... 처음엔 멍~ 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의 부재를 어떻게 상상해본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은 잊자고 잊자고... 망자를 잊으라고 절차가 있는 법...

그를 무덤에 어찌 묻을까...

그 캄캄한 곳에, 너를 어찌 두고...

거기 너를 혼자 두고... 나는 어찌 내려가라고...

 

그렇지만, 내가 너무 울면... 내가 너무 미쳐버리게 환장해서 정신을 놓아버리면,

거기 혼자 쓸쓸히 누웠을 너는... 너무 불쌍하니까... 너무 안쓰러우니까...

정말 아픈 건, 나보다... 너일테니깐...

그래, 일단, 나보다, 널 보내 줄게...

네가 원하는 건, 그걸 거야.

내가 미치는 걸 원하진 않을 거야.

그래. 알았어. 담담하게... 그렇게 널 보내 줄게...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이 그 꽃을 /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 진달래꽃)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사랑은 끝났더라도 그 사랑의 기억만큼은 누추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자존심'으로 푸는 그녀가,

아직은 좀 어려보여서 이야길 하나 꾸며 본다.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시인 이면우...

 

지방 도시의 어느 공장에서 홀로 시 쓰기를 즐기는 보일러공이 있었다.

그에게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늦게 둔 어린 아들에게 '시인'이라는 아버지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를 눈여겨본 사장은 시를 쓰라고 그에게 휴가를 선물하낟.

휴가 동안 그는 한 권 분량의 시를 쓴다.

사장이 사비 들여 오탈자 많은 붉은 시집을 묶어 준다.

이런 시집의 운명이 어떻겠는가.

창고의 비료포대 자루로 들어간 폐품이 가까스로 눈밝은 이의 눈에 띄고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서 존애에는 문단에 알려진다.

이면우 시인과 그의 시집은 이렇게 태어났다.

말 그대로 발굴이었다.(한겨레, 2009. 3. 7)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니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가도 좋을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 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끊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어 올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이면우, '거미' 전문)

 

이면우의 거미를...

마흔 아홉...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는 구절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사는 일은 늘 찌질한 순간의 연속이다.

내가 아무리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올라있는 사람이라 해도,

삶의 매 순간은 참 찌질하다.

 

그 찌질함을 당당하게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시'다.

다들 소심하게 찌질함을 감추거나,

허세에 담아 내지르고 살 때,

혼자서 언어의 그물에 자신의 찌질함을 풀어내는 게 시인이다.

 

백석의 '갈매나무'가 그렇고,

육사의 '절정'이 그렇고,

황지우의 '새들'이 그렇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비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강, 황인숙)

 

ㅋㅋ 찌질하다.

찌질한 인간들의 삶을 이렇게 말로 해 놓으니...

서로 찌질해서 눈물날 지경이다.

그래, 그러니, 눈도 마주치지 말잔다.

 

이 책은 1 : 1.6의 황금비율을 가진 사이즈도 그렇고, 멋진 동피랑 마을 사진도 그렇고...

참 이쁘다.

시들도 참 이쁘다.

근데... 사진을 이쁘게 싣자니 그랬겠지만... 아쉽게도 종이가 넘 두껍다.

그리고 작가의 삶이 조금 더 깊었더라면... 이런 부분이 저 '진달래 꽃' 처럼 몇 군데 보여 아쉽다.

다만, 더 깊어지면, 더 좋은 책을 내 주겠지... 하는 기대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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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7 1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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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7 1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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