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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터의 고뇌 ㅣ 창비세계문학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이 익숙한 제목에 대한 낯섦은 뭐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뮤지컬을 1주 전에 봤고,
그 전부터 이 책을 읽고 있었다.
나도 젊은 시절에(대학교 1학년) 그 책을 읽어 줄거리는 기억을 하지만,
아무래도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으니 세부는 기억나지 않았다.
뮤지컬을 보고, 원작과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해가면서,
얼마나 주제를 잘 살렸는지를 생각하며 읽으려 했는데,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도덕'이라는 이성의 승리가 인간을 얼마나 파멸로 이끄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괴테가 25세 무렵 썼다는 소설이다.
젊은 베르터(독일어 원음엔 이것이 가깝다고 한다. 일본어식 발음 베르테르...)는 프랑크푸르트 궁정의 생활을 벗어나,
한가로운 시골 만하임으로 온다.
거기서 운명처럼 로테 아가씨를 만나지만,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터.
그들의 마주침은 '약혼'이라는 도덕률 앞에서 비극을 잉태한다.
이 소설의 한 에피소드로,
목동과 주인 아낙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러나, 시대적 배경이 역시,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용서하지 않고,
그 사건과 연관지어,
베르터는 목동을 변호하지만, 로테의 남편이 된 알베르트는 도덕률에 따라 그 목동을 꾸짖는다.
18세기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인 만큼,
감정의 격정적 토로가 일품이다.
하늘에 계신 신이여!
미처 지각이 생기기 이저이나 다시 지각을 잃은 이후에만 행복할 수 있도록 인간의 운명을 점지하셨습니까?
불쌍한 사람이로다!
하지만 나는 그대의 슬픔과 그대를 괴롭히는 정신착란이 차라리 부럽다.(155)
인간의 운명이란 어차피 분수에 맞게 견디며 살아가고 자기한테 주어진 잔을 다 비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그 술잔이 인간의 입맛에는 너무 쓰다고 하셨거늘
어째서 나라고 해서 잘난 체하며 그 잔이 달콤한 체 해야 한단 말인가.
나의 삶이 송두리째 존재와 무 사이에서 전율하는 이 끔찍한 순간에 내가 창피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지나간 시절이 미래의 캄캄한 심연을 번갯불처럼 비추고,
내 주위의 모든 것이 가라앉고,
나와 더불어 이 세계도 무너져내리는 이 끔찍한 순간에,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자신의 내면으로만 내몰려서 자기 자신을 잃고 끝없이 추락하는 인간이
헛되이 위를 향해 솟구치려 사력을 다해도 내면의 깊은 밑바닥에 떨어져 이를 갈며 울주짖는 소리가 아닌가.(149)
종교의 시대에서 인본의 시대로,
르네상스라는 '인간의 재 탄생'을 문학적으로 꽃피운 것은 괴테에서부터라 할 만 하다.
나는 이렇게 가진 게 많지만 그녀에 대한 생각이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나는 이렇게 가진 게 많지만, 그녀가 없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 버린다.(144)
이런 것이 사랑이다.
눈먼 사랑이라 폄하할 순 없다.
눈 번히 뜨고 사랑한다고 말해도, 그 사랑 역시 시간이 흐르면 변하기 때문에...
이런 뜨거운 열정을 표출할 수 있던 시대를 만난 괴테 역시 행운아고,
괴테를 만난 17세기 역시 행운의 시대였으리라.
전해지는 말로는 형광석은 햇빛을 받으면 빛을 흡수했다가 밤이 되면 한동안 빛을 발한다고 한다.
로테한테 보냈던 하인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하인의 얼굴과 뺨, 저고리 단추와 외투의 옷깃에 그녀의 눈길이 닿았다고 생각하니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신성하고 소중해 보인다.
그 순간 나는 누가 1000 탈러를 준다 해도 이 하인을 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함께 있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65)
아, 사랑이란 이런 것임을,
인간의 마음이란 이렇게 한 쪽으로 질풍 노도처럼 달려가는 것임을
겪어본 사람은 잘 알리라.
그 빛이 얼마나 신성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그/그녀가 보내준 것임으로 인하여, 아무리 사소한 것 하나라도 내겐 큰 의미가 있는 것임을...
그 사랑이 가치는 '교환 가치'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님에랴.
'사용 가치'라면, 그 사랑을 사용할 수 있는 마음을 낸 것이 바로 '나' 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온몸으로 통과해온 이만이 사용할 수 있는,
자기에게만 덜커덕 열려버리는 자물쇠처럼,
자기에게만 소용되는 사용가치로 사랑은 빛나는 광채를 번득이는 것이다.
창비에서 나온 이 책은 책이 가볍고, 들고 다니기 좋을 정도로 맞춤하게 이쁘다.
이야기 전체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슬픔'이라기 보다는 '고뇌'가 더 어울린다.
슬픔으로 자살한다는 것은 좀 오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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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 하나...
창비는 독특하게 외래어에도 쌍자음을 사용하는 나름의 씨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댓가'라는 말이 두어 번 등장하는데, '대가'가 옳은 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