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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ㅣ 교양 교양인 시리즈 4
박석무 지음 / 한길사 / 2003년 10월
평점 :
우리 역사상 존경할 만한 위인을 꼽으라 한다면 누구를 꼽을까. 그 나라의 위인은 그 나라의 화폐, 특히 지폐를 보면 그 나라가 무엇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 나라 최고 지폐인 일만원권에는 세종대왕이, 오천원권에는 율곡 이이, 천원권에는 퇴계 이황 선생이 도안되어 있다. 백원짜리에는 이순신 장군이 오백원짜리 학보다 초라한 얼굴로 새겨져 계신다. 학 말고 다들 '이씨 성'을 가진 분이란 특성이 있고, 화폐를 만들 당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조에 두고 있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겠다.
간혹 리써치한 결과를 보면 김구 선생이 가장 존경스런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분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앞으로 십만원 권이 등장하면 김구 선생이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될 것인데, 아마 고인이 아시면 손사래를 치실 일이다. 자유독립된 국가의 문지기를 자청하셨지, 사과상자나 차떼기로 비리에 연루되기는 마다하실 분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수록 이유는 그분의 편지글이 글쓴이의 성정이 자세하고도 섬세하고, 완곡하고도 풍부하게 잘 드러나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전기문이나 서간집을 권해주기도 해야 하는데, 이 책은 일단 부피가 부담스럽다. 물론 박석무란 저자가 다산에 천착하는 이인 것은 사실이나, 이 오백여 페이지의 두께에 비해 내용이 턱도 없이 부족하다. 다산에 대한 애정 과잉의 주관이 글의 곳곳에서 흘러넘쳐 따스한 글이 되지도 못했으며, 다산의 생애 위주의 글이고, 그의 시편들에서 그의 성정을 읽을 수 있는, 그저 다산을 만날 수 있는 편안한 책인줄 착각하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한마디로, 다산에 대한 안내서로는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다산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배생활, 특히 유배생활에서 도출된 책들과 서간들을 찬찬히 읽게 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우리가 다산을 이 시대에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가장 부유했던 호남평야의 백성들이 가장 수탈당했던 우리 역사를 굳이 되돌아보지 않아도 지금의 부정부패는 조선 후기, 정조 사후의 3정의 문란에 버금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이었으면서도 농민의 비애를 가까이서 읽을 줄 알았던 시인, 가정을 돌볼 수 없고, 국사에 참여할 수 없는 처지에서 가정과 국가에 보탬이 되는 생을 마감하고자 집필에 몰두했던 철학자이자 사상가, 문필가였던 다산의 글을 다방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포스트 모던의 시대에 적합한 접근 방식이라 이해한다. 그러나, 다산의 정수는 그의 사상과 철학에 있을 것인데, 이 책처럼 풍부한 도록과 지면을 할애하면서, 그의 사상에 대해 수박 겉핥기로 지나간 점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작가처럼 다산에 대한 애정이 강한 사람이라면 사상과 철학을 먼저 엮어 내고, 여력이 된다면 이런 여담들을 묶어주었어도 되지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랄까... 그나마 이 책의 곳곳에 실린 다산의 시편들과 6장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들은 이 책의 가치를 떨어트리지 않는 그나마의 위안을 준다.
내가 읽었던 많은 전기, 시집, 소설집의 첫 페이지에는 그 대상이 된 이의 초상이 실려 있었다. 적게는 1점에서 많은 경우 서너점까지 자화상이나 초상이 있는 것을 당연이라 생각해 왔다. 나의 이런 편견을 이 책은 깨 버렸다. 다산초당, 장기의 쓸쓸한 들판, 수원의 화성 등 다산을 떠올리는 기념물들이 이 책의 숱한 페이지들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그 흔한 초상을 싣지 않은 데 대해 아무 말도 없는 것은 뭔가 석연찮았다. 감각을 통해서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당연한 이해의 과정이 아닐까.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인상을 떠올리면서, 그 사람의 삶에서 우러나는 그 사람의 생각을 읽어나가는 것이 읽는 순서라고 생각한다. 다산의 초상 내지 영정을 싣지 않은 것은 저자의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네이버에서 검색해서 다산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우표에도 수록되었던 다산의 초상을 보고 있으면 외조부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이 떠오를 정도로 외탁을 한 듯하다.
실용적 학문, 철학과 공학을 두루 섭렵하였던 천재가 혼탁한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지만, 역시 천재의 천재성은 진흙에 묻힌 연꽃과 같이 세상을 향해 향기를 풍긴다.
아직도 다산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작가의 <다산 정약용, 그 사상과 철학의 저변> 뭐, 이런 책이 충실하게 엮어져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