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빅토르 프랑클, 프리모 레비의 그 시대... 2차대전과 나치 포로 수용소가 배경이 되는 소설

그러나 첫부분의 성애 부분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그저 '야한 영화'로 인식했던 소설을 읽었다.

읽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 왔다.

이 소설을 '성애'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저급한 평론이 될 거다

첫 부분은 짜릿하고, 가운데 부분은 진지하고, 마지막 부분은 엄숙한 탐구형 소설...

그러면서도 책장이 줄줄 넘어가는 잘 쓴 소설.

 

영어로 reader는 독자란 뚯이지만,  독일어의 vorlesen은 읽어 들려주다, 낭독하다~ 이런 뜻이 있다.

그러니깐 원제목 Der Vorleser는 '리더'보다는 '책 읽어주는 남자'가 가까운 뜻이다.

영어로 만든 영화 제목이 '더 리더'여서 그렇게 알려진 것 같기도 하다.

그걸로 2% 부족한 뉘앙스를 살리려고 '책 읽어주는 남자'란 부제를 붙인 것.

 

이 책은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나지 못하는 사이면서도,

서로 맘이 통해있고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말이 많으면서도 말이 없는 접촉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던 해에

한나에게서 한마디 인사가 날아왔다.(198)

 

말이 많으면서도 말이 없는 접촉.

사랑하면서도 표현할 수 없는 사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면서도 편지 한 장 넣지 못하는 소통.

 

사실, 모든 '사랑'이야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랑'의 형식은 '소통'이기 때문이 아닐까?

통즉 불통, 불통즉 통...

소통하면 아프지 않지만, 소통하지 않으면 아픈 것...

그런 이야기...

소통될 때 아프지 않았지만(아니, 짜릿한 호르몬이 팡팡 분비되지만)

불통되면 아프기 그지없는 인류의 계통적 삶을

한 개체가 반복적으로 겪어내는 고난의 아픔을 쓰는 것이 바로 '연애 소설'인 셈이다.

 

그녀의 안부 편지와 나의 카세트테이프 교환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이루어졌고,

또 한나가 내게 전혀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게끔

가깝고도 멀리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자기 편의주의적이고 이기적인 것임을 나는 안다.(202)

 

어린 시절 육체적 사랑으로 만난 한 여자를,

우연히 법정에서 만나게 되고,

그 여자를 긍휼히 여기며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몸으로 먼저 만나 뜨거운 사랑의 달콤함에 빠져버린다.

그러다가 이별과 논리적 사고가 끼어들고...

글자 없음의 이해 과정이 나중에 글자가 매개된 이해의 과정으로 이행되는 도중에 소설은 끊기고 마는데...

 

나는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누구도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저런 일을 하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

그리고 넌 알 거야.

너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누구도 너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야.

그렇기 때문에 법정 역시 나한테 해명을 요구할 수 없었어.(210)

 

이해받지 못할 삶을 살아온 한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실 우리 모두의 삶에 적용되는 일반적 원리다.

인간은 하나하나 모두 '개별자'로서의 존재로 존중되어야 한다.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는 '일반'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당하다.

 

올 12월부터 '국민건강진흥법'에 따라 공공기관에서 금연이 의무화되었다.

나도 금연자이며, 담배 연기를 싫어하지만,

이런 금욕에 대한 강박을 드러내는 국가들의 공통점은 '독재', '파시즘' 국가의 증명서였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인간은 모두 '개별자'로 이해받아야 함을,

사람은 하나하나 정말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을 긍정할 수 있어야 함을,

이 소설은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시대, 육신과 마음, 만남과 만나지 않음...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깊은 소설.

나처럼 이 소설을 야한 소설이라고 들어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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