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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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그의 글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 이 책에 수록된 곡성 역에서 만난 할아버지 이야기 말이다.

그의 글은 슬픈 빛깔이다. 시골에서 나서 도시에서 가난하게 학교를 다니고, 다시 시골로 돌아간 공선옥의 삶이, 그 바랜 빛깔이, 아니 더 풋풋해진 풀빛 삶이 되살아나 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

하긴 우리 어린 시절에 가난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나보다 3년 일찍 태어났고, 그래서 이 땅의 어느 곳에 살았건 간에 비슷한 원형질을 녹이고 살아왔던 탓인지, 그의 글은 하나하나가 내 과거를 떠올린다. 새마을 운동과 뿜빠뿜빠 하던 쓰레기차의 새마을 노래. 쓰레기가 없던 농촌을 버리고, 모든 것이 쓰레기가 되어 버린 도시의 삶까지...

그리고, 그의 고향 곡성의 목사동면... 내 스무 살 시절의 농촌활동 추억이 담긴 곳이다. 당시는 전두환 파쇼정권이 집권하고 있던 무지막지하던 시절이라, 농활 대학생들을 내쫓지 않으면 추곡수매에 불리함을 입을 지 모른다는 협박에 며칠 만에 우리는 농활을 접어야 했다. 그 때 흘렸던 눈물들은, 그의 고생에 비하면 배부른 고민이었던 것 같다. 

농촌의 어리숙함, 순진함, 순박함이 그의 글에는 질박하게 묻어있지만, 그리고 미쳐돌아가는, 너무 밝아서 오히려 그늘을 더 많이 만드는 세태에 비판적이기도 하지만, 그의 비판은 날이 죽어 있다. 날카로운 사금파리의 섬뜩한 날이 아닌 언제나 바른 것은 옳다고 할 줄 아는 여유로운 날이라 하겠다.

세상은 빨라야 남에게 앞서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하고, 남을 짓밟고서라도 골든벨을 울려야 하는 시대로 달려가고 있지만, 그의 자운영 꽃밭에는 한숨 섞인 과거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따스한 그의 글맛이 시골의 낭만과 여유, 무엇보다 사람사는 재미를 전해주는 훈훈한 책이었다. 소설가들의 수필집에서 느끼게 되는 혐오감을, 돈벌이에 대한 지겨움을 그는 오히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수필문학으로 잘 살리는 느낌이다.

 

생애의 어느 한때 한순간, 누구에게나 그 한순간이 있다.
가장 좋고 눈부신 한때.
그것은 자두나무의 유월처럼 짧을 수도 있고, 감나무의 가을처럼 조금 길 수도 있다.
짧든 길든, 그것은 그래도 누구에게나 한때, 한순간이 된다.
좋은 시절은 아무리 길어도 짧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짧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좋은 것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우리 생애의 모든 것들이 영원하다면
 어찌 좋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좋다는 개념 자체를 우리는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 공선옥의 에세이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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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1-05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은 책갈피가 흰 색인데, 독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