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1
정민 지음 / 효형출판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조용한 전통 찻집 같은 책이었다.

요즈음 출판 업계의 유행은 다양한 텍스트들에서 공통된 <코드>를 뽑아내어 짜깁기하는 것이다. 다양한 <자료>의 바다에서 유의미한 <정보>들을 엮어내는 것은 작가의 재구성을 통한 새로운 창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류의 많은 저작들이 지나치게 가볍거나, 편협하거나, 책값만큼 값어치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있었다. 다행히 이 책은 그런 것을 기우에 그치게 한다.

정민 선생은 고전에 등장하는 새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숱한 새들의 한살이와 사람의 삶을 비유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고, 애정어린 눈으로 보기도 한다.

아무튼 우리가 쉬이 접하지 못하는 고전들을 쉽게 접하는 새라는 소재와 연관지어 재미있게 적는 기술을 가졌다.

새들의 생태에서 인생을 반성하기도 하고, 과학적인 시각으로 오류를 바로잡기도 하고, 소쩍새와 두견이처럼 잘못된 편견을 일깨우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 옛날에는 선비가 높은 사람을 찾아갈 때 폐백, 즉 예물로 흔히 꿩을 가지고 갔다. -----------경은 염소로 폐백을 삼는다. 염소란 양이다. 양은 무리지어 살지만 떼거리 짓지 않는다. 그래서 경이 이것을 폐백으로 하는 것이다. 대부는 기러기를 폐백으로 한다. 기러기란 것은 줄지어갈 때 장유의 차례가 있다. 그래서 대부가 이것을 폐백으로 삼는다. 선비는 꿩을 폐백으로 삼는다. 꿩은 맛이 좋지만 새장에 가두어 길들일 수 없다. 그래서 선비가 꿩을 폐백으로 한다. ---------------선비의 지조와 폐백의 사이에 천년의 시대를 뛰어넘는 결기가 보이지 않는가. 길들일 수 없는 사람이 되기!, 그리고 무리지어 살지만 떼거리 지어 살지 않는 지혜로움. 가끔은 혼자서 뚝 떨어져 사는 용기와 혜안... 아, 우리 정치의 패거리 의식, 얼마나 추한 것인가...

조선 후기 시인 이양연의 <미장조>에 '저 먼곳의 술래잡기새, 산 그늘 봄날에 술래잡기 하누나. 몸 감추고 스스로를 뽐내며 우니, 네 숨음이 참 아님 부끄러워라.'이란 구절이 있다. 아이들이 술래잡기 할 제, 술래를 놀리려 뻐꾸기 소리를 냄을 흉내낸 것으로, 안빈낙도하는 듯 하면서도 마음은 속세를 버리지 못한 선비의 삿된 마음을 조롱한 노래라 하겠다. 조선시대엔 안빈낙도, 빈이무원, 안분지족 하는 노래들이 많았으나, 입신양명의 출세가 선비의 일생의 목표였음을 본다면, 진정한 은자를 찾기 어려웠음을 비꼬아 비판하는 노래라 할 수 있다.

오늘 드라이브를 가다 수백의 까마귀떼를 만났다. 새들은 충분히 서로 다정하고 지혜로워 보였다. 인간들은 날짜가 새로 바뀌었다고 다들 길가에 뻗지르고 서서 꼼짝을 못하고 있는데, 그 검은 새들은 찬 공기 마시며 하늘을 자유로이 비상하고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쉬고 했다. 이번 해일 참사에서도 동물들의 사체는 나오지 않는다는 뉴스를 들으면, 그닥 뉴- 하지도 않은, 동물보다 못한 인간의 육감과 인간의 지능과 인간의 업적을 새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고전, 특히 한시의 아늑한 향취를 새라는 그림들과 어울려 녹여낸 정민선생님의 수고에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책이 그림 자료들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다보니 책이 너무 무겁고, 값이 비싸다는 점(한 권에 19000원, 총 2권)을 감출 수 없다. 내용의 무게에 비해, 책의 물리적 무게는 누워서 들기에 지나친 감이 있었고, 값도 구입해서 보기엔 무리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정말 좋은 책이므로 주변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해서라도 꼭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다. 학교 도서관에도 구입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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