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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 - 문정희 산문집
문정희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8월
평점 :
곡비(哭婢)
문정희
사시사철 엉겅퀴처럼 푸르죽죽하던 옥례 엄마는
곡(哭)을 팔고 다니는 곡비(哭婢)였다.
이 세상 가장 슬픈 사람들의 울음
천지가 진동하게 대신 울어주고
그네 울음에 꺼져버린 땅 밑으로
떨어지는 무수한 별똥 주워 먹고 살았다.
그네의 허기 위로 쏟아지는 별똥 주워 먹으며
까무러칠 듯 울어대는 곡 소리에
이승에는 눈 못 감고 떠도는 죽음 하나도 없었다.
저승으로 갈 사람 편히 떠나고
남은 이들만 잠시 서성일 뿐이었다.
가장 아프고 가장 요염하게 울음 우는
옥례 엄마 머리 위에
하늘은 구멍마다 별똥 매달아 놓았다.
그네의 울음은 언제 그칠 것인가.
엉겅퀴 같은 옥례야, 우리 시인의 딸아
너도 어서 전문적으로 우는 법 깨쳐야 하리.
이 세상 사람들의 울음
까무러치게 대신 우는 법
알아야 하리.
문정희의 시 중에 내가 젤 좋아하는 시는 '곡비'다.
남의 '한'을 다 읽어주어서 풀어주는 '무당'같은 존재의 하나인 곡비를 들어서,
'세상 사람들의 울음, 까무러치게 대신 울어주는'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시다.
그런데... 이 수필집을 읽노라면, '밥맛이야~' 이런 느낌이 든다.
지나치게 해외 작가 캠프에 참석했던 경험을 자랑하듯 쓰는 부분도 그렇고,
'졸시'라고는 하나 자기 작품이 어쩜 세상 이치를 어느 정도 떠안고 있단 자부심을 갖는 듯하여 실소가 나오게 한다.
나처럼 제 잘난 맛에 살면서, 남의 자랑을 눈꼴시어 듣지 못하는 사람은 읽기 부담스럽다.
말은 칼에 비유하지 않고 화살에 비유한다.(17)
칼과 화살은 무기로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칼의 상처는 일시적이다. 반면 화살은 상대에게 박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다는 비유렷다.
"아, 아직 젊다! 참 눈부신 나이군!"(34)
나도 나이가 지긋해지고 있다고 느끼는데, 이런 말은 날 겸손하게 한다.
그래. 아직 젊은 나이다.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오늘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들을 쓸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때로는 나를 사랑했다. (파블로 네루다,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중)
이 평범한 한 구절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랑의 구절이 아닐까.
라고 적었는데... 글쎄, 제일 슬픈 구절을 두고 아름다운 사랑의 구절이라니...
사랑은 슬퍼도 아름다울 순 있지만, 그 슬픔에 좀더 몰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겨울 사랑, 전문)
'너에게 가고 싶다'는 시는 흔하다.
사랑노래치고 그런 맘 담은 시야 쌔고 쌨다.
따스한 겨울, 천년 백설... 그 맘이 이해 간다.
곡비가 되어, 세상 낮은 사람들의 슬픔을 울어 주려면,
그 낮은 자리에 내려가 함께 울어주는 마음이 필요하련만,
그의 글은 낮은 자리에서 울어주는 사람들의 울음에 위로가 되기 힘든 구석이 많다.
나의 친구인 이스라엘의 시인의 시집을 밤늦도록 읽었다.
"결코 절망하지 마십시오. 결코!
희망을 포기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일은 최악에서 최선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그것도 눈 깜박할 순간에...(176)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생각해 보는 마음이라면,
이런 시를 이스라엘 친구의 목소리라고 좋아라 읊기엔 무리라고 볼 수 있잖나 싶다.
그리고... '눈 깜박할' = 눈 깜박할 순(瞬) 이니 '눈 깜박할 사이'가 좋겠다.
암튼,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수필집이다.
서슬 퍼런 <문학의 도끼>를 기대한 독자에게,
스스로 꽃다발 걸어주는 '자화자찬의 꽃다발'을 만나게 하는 일은... 좀 낯간지럽다.
=========== 오류 두 곳
88. '철의 장막'과 '죽음의 장막'으로 불리었던 소비에트와 중국이... ㅋㅋ '음' 하나가 이렇게 웃길 수가...
중국의 특산물 '대나무(죽)'를 들어서, 중국의 장막을 죽의 장막이라 불렀다.
170. 강원도 소양강에만 가도 손벽을 치고 노는데... '손뼉'이 옳다.